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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Sep 20. 2022

[건강일기] 코로나 4호

  다른 집은 코로나에 한꺼번에 걸리거나 드문드문 걸려도 일주일 시차 정도만 둔다던데 우리 가족은 격리를 너무 철저하게 하는 탓인가 6월에 1명, 8월에 1명 이렇게 따로따로 걸려왔다. 그리고 추석을 앞두고 3호가 나왔고 마침내 가족내 전염으로 내가 4호가 되었다. 어차피 걸릴 거라면 같이 걸리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세간의 말은 믿을 만 했다. 1호만 나왔을 땐 보육자로서 나까지는 걸리자는 마음으로 둘이서 같이 일주일을 방에 갇혀 지냈는데도 감염되지 않았다. 2호가 나왔을 때에는 우리 가족의 면역력이 괜찮은가 싶어 2호로 끝이겠다는 허황된 믿음으로 철저하게 격리해서 감염되지 않았다. 그런데 3호는 어떤 연유로 걸렸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다보니 하루차를 두고 나도 걸려버렸다. 아마 1호와 2호가 미감염 상태였다면 이번에야말로 다같이 걸렸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고위험자인 5호가 걱정되었을 뿐이었는데 5호는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아무래도 5호가 가족내에서도 교류가 적은 편이라 그랬나 보다. 아무튼 둘이 동시에 걸리니 가족들이 조심해야 하는 기간도 적고 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3호의 증상은 경미했다. 


  문제는 4호인 나의 건강 상태였다. 1,2,3호가 모두 무증상 또는 경증상인 상태였는데 나는 꽤 힘들었다. 목구멍에 면도칼을 심은 것 같다는 인후통 증상은 거의 없었지만 고열과 오한으로 이틀을 꼬박 앓았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가 격리 기간 내 유지되었는데 너무 신기했다. 실연의 아픔으로 잠을 못 이루던 때에도 그놈의 배고픔 때문에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한데 코로나는 배고픔도 사라지게 했다. 문제는 격리 후 후유증이다. 많은 사람들이 겪듯 나 역시도 기침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1,2,3호는 후유증도 없는데 나만 후유증이 있다. 무슨 차이란 말인가?


 코로나에 걸렸었나 싶었던 때가 있었다. 뉴스에서 말하는 증상들이 나타났고 증상도 꽤 심했는데 검사가 매번 음성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1,2호가 감염되었을 때 전염되지 않은 것을 보고 아마 그때 코로나가 맞았었나보다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걸려보니 감기와 코로나는 확연히 달랐다. 일단 증상이 심할 때에는 자가키트로 해도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번 감기 때에는 몇 번을 검사해도 매번 한 줄이었다. 키트의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해도 진짜 코로나라면 증상이 심한 때부터 한동안은 두줄이 나오게 된다. 괜한 의심을 했다. 또, 감기는 한 증상이 좀 길게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데 코로나는 무슨 코스 요리처럼 증상들이 내 몸을 드나들었다. 처음엔 인후통, 다음엔 몸살, 마지막으로 기침이 마치 일정이 정해진 듯 치고 빠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다고 했으니 이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느낌과 달라 '코로나는 역시 코로나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예민한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몸에서 나오는 반응이 감기와는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호흡기 질환이 맞고 어떤 사람은 감기와 비슷하거나 감기보다 가볍게 지나간다지만 증상의 발현이 덜 되더라도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이 일반 감기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형태의 감기라면 그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지금까지의 감기와는 분명 다른 존재이다. 앞으로 더 자주 전염병이 발생할 거라던데 인간의 몸이 얼마만큼 적응을 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지금의 코로나는 사람 몸의 상태에 따라 증상이 제각각이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예방의 힘인지 격리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은 버티고 있다. 하지만 다음에는? 내 개인의 경험으로 보자면 꽤나 지독하게 앓은 터라 더 두렵기도 하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지구는 인간을 지켜준 존재였고 인간은 지구 내 다른 존재들이 인간을 공격할 거라는 생각을 못한 채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지금처럼 살아서는 지금처럼 살 수 없을 거라는 근심이 생겼다. 최소한 나는 잦고 낯선 전염병들을 잘 못 버틸 것 같다. 코로나가 코로나 했듯, ***도 ***하는 날이 오리라는 근심이 가족 내 코로나 4호가 되면서 더 가깝게 다가온다.  *** 4호가 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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