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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Oct 05. 2022

[배움일기]인생도처유상수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회의에 초청을 받아 약속 장소에 갔는데 날짜를 잘못 전달받은 거라고 해서 당황했다. 내일은 선약이 있어 참석이 어려운데 오늘 참석하면 안 되겠냐고 하니 난색을 표했지만 허락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서 회의 시작을 기다리다 보니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르신들이 착석해 있었다. 사전에 이 회의가 연령별로 구분된 회의라는 것을 안내받지 않았던 터라 그냥 내일 참석하나 오늘 하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마찬가지가 아닌 자리였던 것이다. 직원에게 '오늘은 시니어 시민 기획회의'라는 확인을 받고 나니 더더욱 좌불안석이었다.


'곤란하다'는 감정카드로 내 소개를 시작했다. 인사를 마치고부터는 오늘 어떤 모드로 이 회의에 임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르신들보다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안 될 것 같고, 입을 꾹 다무는 것도 안 될 것 같고, 눈은 어디를 봐야할지도 모르겠고, 일단 고개나 잘 끄덕거리자는 정치적 자세로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 사회이다. '배움을 좋아하는 시민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내게 같은 시민이기 이전에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연령대를 구분해서 회의를 주최하는 자체가 시민 이전에 나이를 고려한 것 아니겠는가? 진행자 역시 모든 질문은 어르신들부터하고 마지막에 끼워넣듯 내게 물었다. 그것은 중간에 끼어들지 못할 나를 배려한 행동이기도 했고, 일반적인 우리의 정서를 반영한 행동이기도 했다.


최근 [다정함의 과학]을 읽으며  목적의식을 가지고 배우는 태도는 사람을 오래 건강하게 한다는 내용을 읽었다.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수긍하며 읽었는데 이날 참석하신 분들의 삶을 들으니 과연 그러했다. 50살부터 시작한 마라톤을 70대가 된 오늘까지도 매일 10Km를 달린다는 어르신, 하루 일과의 절반 이상이 강좌 수강인 어르신, 배움을 위해서라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어르신, 자립 노년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니 책에서 읽은  구체적 사레가 되었다. 처음에는 좌불안석이던 그 자리가 여러 분들의 발언을 듣다보니 편안해지며 어느 새 배움모드로 변신해 있었다. 이들의 삶의 태도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같았고, '어르신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은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잠깐의 짬에 '어르신 말씀에 마음이 너무 좋았다.'라고 전하니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대등하게 '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든 사람의 대접을 받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편견이 깨진 순간이다.


며칠 후에 독서 모임에 참여해서 [다정함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날의 일을 말하게 되었다. 처음의 곤란한 마음이 어느새 배움의 순간이 되었다며 오히려 세대가 섞여 있는 모임일수록 더 배울 것이 많고 대화가 더 재밌기도 하다는 데에 우리는 동의했다. 마침 그날의 구성원 역시 20대부터 50대까지 남녀가 섞인 모임이었기에 자화자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마지막에 의문이 생겼다. 아마 그건 가끔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만나는 사람은 그저 또래나 같은 생각의 범주 안에 있는 사람이 더 편하지 않을까? 그들과 더 말이 잘 통하고 재밌지 않을까? 다른 세대, 다른 범주에 있는 사람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는 게 과연 편하고 재밌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또 금새 생각을 바꾸었다. 배움은 보통의 날들에서 잠깐의 변화가 있을 때 일어나는 게 아닐까? 편안하고 재밌는 일상이 아니라 그것에서 약간 벗어날 때 감각이 열리고 배움이 들어오는 게 아닐까? 마음이 답답해지고 부담스러운 상황을 예상했다가 그것이 내 편견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많은 지헤가 내 안에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인생도처유상수는 그렇게 어쩌다 만난 낯선 사람에게서 느끼는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회의가 지금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다소 거만한 듯 보였던 태도도, 애써 꼰대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태도까지도 모두 그려진다. 그런 모습은 내가 정말 질색팔색하는 모습이지만 그날 내가 만난 것이 상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인들 거만하지 않고, 말을 앞세우지 않으며, 흉한 모습이 없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들어와 나에게 울림을 주고 나간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찌 상수가 아닐까? 독서모임이 끝날 무렵 다른 성별, 다른 세대의 두 사람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했다. 그날 집에 가서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 듯 다음 날 단톡방에 자신들의 날카로움에 대해 사과했고 조율했다. 그것을 보는 마음에 또 하나의 배움이 들어왔다. 사람은 같은 물에서만 지내면 배움이 드나들기 어렵구나. 상수를 만나고자하면 인생도처를 먼저 만나야겠구나.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도 거부하지도 말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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