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뭐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Jan 12. 2023

[생각일기] 가장 나다운 글

최근에 읽은 글쓰기 책이나 들었던 글쓰기 강좌에서 공통적인 조언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라. 그 말을 듣고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세이라는 장르를 거의 읽지 않은 내가 에세이를 쓰려고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돌이켜보건대 에세이를 많이 읽기 시작한 것은 내가 작년에 글쓰기에 몰두하면서부터였다. 에세이의 톤을 잘 알지 못했기에 그것을 익히려는 속셈이었지 에세이가 너무 좋아서 읽는 순수한 독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잘 쓰여졌다고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에세이도 한두 꼭지 맘에 드는 부분은 있었지만 에세이 전체에 감탄을 한 것은 대작가들의 글쓰기와 독서에 관한 에세이들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을 전부 드러내야 하는 에세이를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코 그런 에세이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에세이들이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겠구나 인정할 뿐 그 누군가가 되지는 않는 독자에 해당한다. 


그럼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지? 나는 일기를 쓸 때 가장 자유롭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을 때 편안하다. 일기란 원래 자기 자신만을 독자로 상정하고 쓰는 글이지만 그것이 보여져도 상관없는 일기도 있어 우리는 누군가의 일기를 출판된 책으로 즐길 수 있다. 어떤 메시지가 강하게 들어간 에세이보다는 자유로운 일기가 내겐 더 아름답다. 이를테면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결코 소설로 쓸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의 목록'과 같은 매력이 일기에 있다. 나는 그 매력이 잘 다듬어진 에세이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독자는 에세이를 사랑하는 독자에 비해 많지 않을 것이고, 그런 매력적인 일기는 대체로 유명한 사람들의 것인 경우가 많아 이것을 내 업으로 삼기는 어렵겠다. 일기를 쓰고 보이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독자가 형성되지 않는다.


또 좋아하는 글은 지식을 부드럽게 전달하는 글인데 어쩌면 이것도 에세이로 분류될 수 있겠다. 지식 에세이나 라이트 인문학, 쉬운 교양 서적 등 다양한 장르를 갖다붙일 수 있는 영역이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그렇고, 역사나 철학,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쓴 에세이가 이에 해당한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나도 가능하지만 그에 관하여 너무나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틈에 내 자리가 있을까 회의가 든다.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장르이기는 하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역사, 철학, 과학 등을 꾸준히 배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문가는 아닌지라 그것을 소재로 에세이를 쓰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중 가능성이 높은 것을 꼽자면 중국사와 중드를 연계한 에세이가 가능하겠고(이건 이미 원고도 많이 써놨다.), 교육에 관한 에세이라면 전문가가 맞으니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장르라고 하겠다. 하지만 교육에 대해 내가 쓴다면 그건 나 스스로가 너무 오글거릴 것 같다. 다들 그런 오글거림을 극복하고 쓰는 거겠지만.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데 그쪽은 대학 때 잠깐 흥미를 가졌었지만 내게 소설가는 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인물, 사건, 배경 어느 하나 나는 치밀하게 짜지 못할 것이다. 시는 잘 쓰고 싶었고 그래서 한때 시를 적극적으로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과 마찬가지로 내 안의 글 곳간이 풍요롭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과 시에 관하여는 순수하게 독자로 남기로 결심했었다. 다만, 동화에 대한 욕망은 남아있다. 사람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가장 많이 보는 대상이 어린이다 보니 어쩌면 동화는 재밌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혼자만의 착각에 아직은 빠져있다. 


내가 학창 시절에 조금만 더 진취적이었다면 교대에 들어가 교사가 아닌 일을 하지 못하는 지금같은 상태는 되지 않았을 텐데 그점이 살면서 자주 후회가 된다. 너무나 안정된 직장이라 다른 꿈을 꾸기가 어렵다. 남들에겐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지만 애시당초 교사보다는 카피라이터나 작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게으른 성격에 주어진 삶에만 적응하느라 그런 꿈을 제대로 꾸지 못했다. 카피라이터나 작사가가 독립적인 글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내가 왜 그림책의 글작가가 되고 싶은지도 알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뭔가 새로운 일을 스스로 만들기 보다는 누군가가 만들려고 하는 때에 힘을 보태는 시너지 효과를 잘 내는 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자주 도움을 요청하곤 한다. 그간 나는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나 내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기쁨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능력치였구나 새삼 깨닫는다. 


정리하자면, 가장 나다운 글은 혼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힘이 있는 글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것을 내것으로 만들어서 좀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내는 창작의 형태가 된다. 일기라는 장르가 지극히 사적인 글이지만 '내 일기를 읽을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전제 하에 주절거리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또 하나의 장르가 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이 일기들을 쓰는 동력으로 내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나다운 글, 가장 내가 읽기 좋아하는 글을 일단은 쓰자. 잘 쓰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쓰자. 내가 읽고 싶어하는 글을. 그런 글을 작년 내내 쓰고도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또 써 보자. 글 쓰면서 내가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일기] 거절당하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