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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Mar 22. 2023

[생각일기]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복직 후 첫 글

나는 내가 멀티가 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면서 노래를 듣고 심지어 따라부르기도 하고, 컴퓨터 시대가 열리면서는 이 작업 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복직을 하고 알았다. 나는 깊은 작업에 대한 멀티는 불가능하다고. 휴직 기간동안 부지런히 쓰던 글은 복직과 동시에 잠정 휴업 상태에 들어갔고(일과 관련되지 않은, 아니 일과 관련이 되더라도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것은 이 글이 처음이다.) 호기롭게 브런치와 투비를 모두 개설한 나의 용기는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단기 기억은 잘 하는데 장기 기억은 잘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시험 전날이라고 날밤을 새지는 못했지만(별명이 잠순, 잠충이었으므로) 그래도 아침형 인간이라 아침 일찍 공부를 하면 곧잘 시험을 잘 봤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시험이 끝나면 내용이 전혀, 말 그대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내 장기기억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살면서 장기기억을 쓸 일이 크게 있지 않아서 단기 기억이 좋다는 것의 장점만 누리면서 살아왔다. 교사로서 반 아이들 이름을 외는 데에도 단기 기억은 큰 쓸모가 있었으니 지금도 하루 이틀이면 노력하지 않아도 애들 이름을 다 왼다. 얘들을 매일 보는 게 아니라면 그 즉시 잊어버렸겠지만 매일 보기 때문에 잊지 않고 일 년을 '이름 잘 외는 선생님'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셈이다. 그 뛰어난 단기 기억력 때문에 요모조모 작은 일에는 큰 도움을 받고 살았는데 굵은 일을 동시에 하자니 도무지 되지를 않아서 속상한 참이다. 


교사로서의 삶, 엄마로서의 삶, 읽고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은 모두 큰 에너지를 써야하기에 세 가지를 동시에 해낸다는 것은 소머즈와 같은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교사로서의 삶은 내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고, 직업인으로서 윤리에 어긋나기도 하며, 또 어느 정도는 재미도 있어서 현재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이다. 엄마로서의 삶은 휴직 때보다는 소홀하지만 일하는 엄마로서는 이 정도면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엔 오로지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 할애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이 문제다. 내가 가장 잘 해내고 싶은 삶은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사는 일인데, 쓰는 것은 커녕 3월의 중반에 이르도록 책을 겨우 3권만 읽었을 뿐이다.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은 것 같은데 읽은 책을 앱에 기록하려고 보니 세 권째더라....그러니 쓰는 삶이야 언제 이뤘겠는가? 참말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도 지내고 싶은데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긴 호흡으로 쓸 이야기까지 모두모두 손도 대지 못하겠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해야 할 일이 급하여 글을 쓰겠다는 마음가짐을 자꾸만 미루게 된 게 벌써 한 달 째이고, 출퇴근 길마다 '글은 언제 쓰나'는 생각이 반복되면서 최근에는 스트레스까지 쌓였다. 그나마 독서 일기를 공책에 쓰고 있다는 것만이 위안이 된다. 사실 오늘도 미룰 뻔했는데 나 자신이 미워지려해서 이 글이나마 쓴다. 


세상에 모든 작가들은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일까? 깊은 멀티가 되는 뛰어난 인간이 아니라면 결국은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인데 내게 직업은 너무나 큰 무게로 느껴진다. 교사라는 직업을 잘 해내고 못 해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무게감이 버거울 때가 많다. 희로애락이 있고 보람도 있는 직업이지만 다시금 심각해진 어깨통증이 증명하듯 내게 이 일은 지나치다.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하루종일 내 얼굴만 보고 있는데 어떻게 소홀할 수 있고, 아이들 이전에 나를 떠올릴 수 있을까?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걸까? 글쓰는 습관이 아직 덜 되어서 그런걸까? 생각의 여백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초보라서 그런 걸까? 오늘의 여백에는 많은 의문들이 차오른다. 일단 오늘 이렇게 간만의 글에서 속 마음을 적어본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지만 개운하지 않다. 개운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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