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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pr 05. 2023

[중드일기] 천룡팔부에서 육아의 길을 찾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천룡팔부>는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다. 송나라와 거란족의 갈등, 정파와 사파의 갈등,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갈등도 흥미롭지만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교봉(소봉), 허죽, 단예 세 사람을 비롯한 인물들의 출생과 육아의 특징에 큰 관심이 생겼다. 


먼저 교봉. 교봉은 거란족 출신으로 본명은 소봉이나 오해로 교봉의 부모를 죽인 송나라의 무림인들이 교봉만 데리고 와 인품과 실력을 두루 갖춘 당대 최고의 무협인으로 길러 결국 개방방주가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 그의 출신이 알려지면서 거란족으로 돌아가 송나라와 대치되는 입장에 서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인품은 그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양부모와 사부와 개방방주가 얼마나 잘 키워줬는지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무협물에서는 자신을 적으로 삼으려는 무림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흑화되고는 하는데 교봉은 무소속일 때에도 주변 사람을 먼저 챙기고, 거란의 남원대왕이 되어서도 수하들을 형제처럼 대하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으며, 반전주의자로 거란과 송나라의 백성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일관된 정의감을 보여준다. 그 정도 실력자가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어 평화를 이루어내니 그가 살린 생명이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자기 실력 뽐내려고 겨루기만 해대는 강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리면 진정한 고수는 대의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교봉의 부모는 거란족의 귀족으로 아버지 소원산은 한족 스승을 두었기에 한족을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억울하게 한족에게 급습을 당해 아내를 잃고 아들일 뺏기니 소원산은 훗날 흑화되어 복수랍시고 교봉의 양부모와 사부를 죽이는데 그걸 안 교봉은 아버지 편을 들 수가 없다. 이따가도 말하겠지만 아버저보다 한 술 더 뜨는 모용복과는 비교가 된다. 교봉은 아버지보다 더 인품이 뛰어난데 그것을 나는 그의 양육과정에서 찾게 된다. 소박한 농민인 양부모는 그에게 다정했고, 그의 사부는 놀림을 받던 교봉을 데려와 손수 무예를 가르치며 애정을 쏟았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왕방주조차 그를 믿고 방주자리를 넘겨준다. 거란에서 귀족으로 자랄 때보다야 풍족하지 않겠지만 사랑과 믿음을 받은 그가 잘 자라게 된 것은 당연지사. 애초에 소원산의 자질도 나쁘지 않으니 교봉은 정의로운 강호 일인자가 될 수 있었다. 


그 다음 허죽. 허죽은 날때부터 소림사에 있었으니 제 부모를 알지 못한다. 배움이 느리지만 깊이가 있어 의외의 길을 가게 되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소요파의 장문과 영취궁주, 서하국의 부마가 되는 보이지 않는 끈은 아니었을까? 울며 겨자먹기로 얻은 장문자리와 궁주자리 때문에 소림사에서 파문당하는 순간 자신의 엄마가 사대악인 중의 하나인 섭이랑이라는 사실과 아버지가 소림파 장문인 현자대사라니....이런 정신적 충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거나 삐뚤어지지 않고 오로지 불심과 선한 마음으로 일관하니 응원하게 되는 캐릭터이다. 소림대사인 현자와 사대악인 섭이랑의 만남의 과정은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허죽을 잃은 후 그들의 행보를 보자면 섭이랑의 경우 좋은 유전적 기질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또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견딘 면을 보자면, 소림사에서 허죽이 다른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도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는 인내심은 부모 모두로부터 받은 좋은 자질 같다. 그런 자질을 바탕으로 소림의 엄격한 규율을 배워 결코 타락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허죽의 이야기는 지난 번에 한 관계로 여기까지만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단예. 단예는 소국이기는 하나 대리국의 왕자로 무예에 관심이 전혀 없지만 대대로 고수 집안이다. 아버지 역시 육맥신검의 고수이자 미남자이나 단예와 달리 여색을 너무 밝혀 이복딸들이 너무 많다. 그중 아들은 하나로 그가 바로 황후가 낳은 단예이다. 그런데, 그 단예가 알고보면 대리국의 태자였다가 사대악인의 우두머리가 된 단연경의 자식이었다니! 어차피 생부와 친부가 사촌관계라 유전적 자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런지도 모르지만 그가 만약 사대악인이 된 단연경의 품에서 자랐다면 지금처럼 곱고 선할 수 있었을까? 대리국에서 자애로운 황제와 부모, 그리고 그를 지켜주는 호위무사들에 둘러싸야 저 하고픈 공부만 하며 살았으니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랄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래도 그런 따뜻한 가정환경이 사랑하는 여자마다 아버지의 숨겨진 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반복되어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건 아버지의 바람둥이 기질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세 사람의 출신은 제각각이나 그들이 자라온 환경은 그들을 정의롭고 올바르게 자라게 했다. 비록 몰락한 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실력과 외모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부모의 가스라이팅으로 혹독하게 자란 모용복이 복수와 승부욕으로 무너지는 모습과 비교하면 더 절실이 알게 된다. 아주와 아자도 그렇다. 같은 부모 아래 자랐지만 아주는 모용복의 시녀면서도 독립적인 공간을 운영했던 아주와 사악한 문파인 성숙파에서 나쁜 짓만 배워온 아자의 성품이 극과 극인 것을 보아도 그렇다. 물론 같은 부모 아래서 나고 자라도 그 성품이 제 각각이지만 아자와 아주 같기는 드문 일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육아를 생각했다.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좋은 자질도 나쁜 성품이 될 수 있고,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면 역경도 조금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재밌는 드라마, 소설을 보고서 육아에 꽂히다니 스스로도 몇 번이나 웃었지만 내겐 그 어떤 육아서의 가르침보다 큰 깨달음을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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