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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pr 24. 2023

[독서일기] 북클럽 비단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번 달 북클럽 비단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서사가 바로 가족 서사이며, 그중에서도 아버지 서사인데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추천이 이어지고 우리 북클럽에서까지 선정이 되니 이번에는 피하기가 어려웠다. 책은 술술 재밌게 읽혔고,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과 아버지와의 사연에 따라 '나의 아버지 고상욱'은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합리적 사회주의자', '속깊은 어른' 등 입체적인 모습을 지니게 된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해방을 맞은 아버지에 대해 화자인 고아리가 아버지와 마음으로 화해하는 과정이 주요 이야기축이지만 그런 부녀간의 이야기를 넘어 빨치산이라는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인식까지 건드리는 소설이다. 아버지와 빨치산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는 많은 사람들의 예찬을 받기에 차고 넘치는 소재인데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이 가독성까지 높여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점에는 동의한다. 


책을 오래 전에 읽기 시작해서 한참 쉬다가 모임 직전에 이어서 읽었는데 내용이 고스란히 기억이 나는 건 내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작가가 인물을 임팩트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북클럽에서 소설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유명한 소설이다보니 소설밖의 이야기도 오고가고 그러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함께 읽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자꾸만 석연하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처음 별점 4.5를 주었을 땐 아마 나도 모르게 유시민 등 내노라하는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소설이기에 후하게 평가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결국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 서사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나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장례식이 너무 두렵다. 아리도 그러했을지는 모르겠다만 결론적으로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실패할 것 같다. 진작부터 아버지의 장례식은 내게 두려움의 장면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는 빵점보다 못한 마이너스였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이해를 포기한 채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하지만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다면 이해를 포기한 그 순간부터의 감정을 한꺼번에 정산해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모임에서 이런 사연은 나만의 특수한 사연이었고 대부분은 아버지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이 강해서 나의 두려움을 상쇄시킬 수 없었다.  그런 분들의 장례식이야 무슨 화해가 필요하고 감정 소모가 필요할까? 절하느라 아플 도가니만 걱정하면 되는 게 아닐까? 삐딱한 마음도 불쑥 들었다. 고상욱에 대해 가졌던 딸 아리의 불만이나 마뜩찮음이 장례식에서 해소된 것과 달리 내 불만과 상처는 해소되기는 커녕 장례식으로 인해 더 크게 마주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더 크게 다가왔다.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소설인가?


그래서 내게 이 소설은 아버지와 딸의 해방으로서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저 빨치산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존재와 현실에 대하여 부담감을 지워게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짝퉁같은 제목이 뭐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이유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토론이 끝나고 낮잠을 한 번 자고나서도 내게는 제목에서 주는 동화같은 분위기와 말끔하게 해소가 된 부녀간의 감정이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이 소설이 장진 감독 스타일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꽤나 재밌을 것 같다는 분석적인 평가밖에 느끼질 못했다. 아마 혼자 읽었더라면(아마 읽지 않았겠지만) 이만큼의 의미도 갖지 못한 채 책장을 덮은 순간 지워졌을 테지만 함께 읽다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이것은 책에 득인지 실인지 모르겟다. 내게도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다. 때로는 득과 실을 따지기 어려운 그런 책과 북클럽도 있다는 것만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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