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이번 주말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의 두번째 북클럽이 있다. 고로, 이번 주중에 <인생론>부분을 다 읽어야 한다는 말씀. 그러나 이제 시작함.
2023. 04. 26
오늘은 기필코 쇼펜하우어 진도를 나가야 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마침 세라젬 웰카페 근처 서울시민대학의 학습 공간이 밤까지 개방된다고 하니 커피를 들고 그곳에서 읽는데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으랴? 너무 집중이 잘 되어서 기분이 참말로 좋았다. 다만, 쇼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 읽던 부분을 몇 번이고 되돌아가야 했지만 결코 졸지는 않았다. 그때의 적막이 지금도 기분좋게 느껴진다.
오늘 읽은 부분은 삶과 죽음, 고통과 자살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자살에 관한 장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학술적인 내용들이었다. 번역이 잘 된 게 맞는 거겠지? 내 문해력이 문제인 거겠지? 좌절이 되긴 했지만 내 나름대로의 이해를 해 보기로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본질'이 현대과학의 '유전자'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사물은 소멸하지만 '본질'은 영원하다니 내가 그렇게 이해하는 게 영 무리수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유전자라고 영원하지는 않지만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유전자를 동시에 머리에 떠올리며 정리하자면 '생존 is not 존재'요, '죽음 is not 소멸'이 된다.
결국 존재는 소멸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로 존재하므로 현재의 어느 한 순간만을 목적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씀인 건가? 지적 존재로서 인간의 고통이 다른 동물들과 다를 수밖에 없지만 느끼는 바는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인간의 고통에 너무 괴로워 말고 인생을 존재의 긴 흐름 속에서 속죄의 장소로 삼으라는 건가? 알 듯 말 듯 괴롭다.
허무주의 같기도 하고 냉소적이기도 한데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모든 현재는 동일하다'는 명제는 어떤 면에선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모든 면에서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자실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자살을 하든 말든 그건 개인의 권리인데 그건 참 서툰 실험이라고 덧붙이니 츤데레 느낌도 난다. 어렵지만 쇼펜하우어를 그의 글로 직접 만나니 좋기도 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머리에 쥐가 나면서도 쇼펜하우어를 읽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