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차오웨이, 왕이보 주연의 <무명>
올초에 량차오웨이와 왕이보의 <무명>이 개봉된다는 소식에 한참 들떠 있었다. 개봉관이 많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럴수록 극장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훠젠화의 영화는내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혼자 보러갔었는데 <무명>은 보고 싶은 내용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영화 <밀정>도 보지 않은 터에 꼭 이걸 보려고 한다는 게 스스로도 약간은 어이가 없지만 변명을 하자면 그 당시 중국의 상황은 정말 하나도 모르기에 알아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변명은 변명일 뿐 중드도 고장극만 보는데, 량차오웨이가 아니었다면 굳이 보진 않았을 거다. 이런 면에서 량차오웨이는 참 역할이 큰 사람이구나! 그렇게 극장에 갔고 4분전에야 도착한 상영관엔 나만 있었다. 시간이 다 되어 세 분이 더 들어오긴 했지만 오붓하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일기에는 내게 익숙한 대로 량차오웨이는 양조위로, 왕이보는 그대로 왕이보, 저우쉰도 그대로 저우쉰이다.
2023. 5.1
양조위, 왕이보 주연의 영화라니, 내용이고 뭐고 일단 보기로. 개봉을 놓치면 집에선 더 보기가 어려운 게 육아의 현실이다.
개봉관이 적었지만 마침 저녁 시간에 메가박스강동에서 상영하여 볼 수 있었다. 참혹한 장면 한둘은 보는 대신 울어야 했지만 2시간이 넘는 내내 무겁고 어두운 영화인데도 영상미와 편집, 연기로 인해 굉장히 집중해서 봤다. 영화가 끝나고야 2시간이 넘었던 러닝타임에 놀랄 만큼.
우리가 일제 시대를 겪은,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국도 겪었구나!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어떻게 버텼던 걸까? 유럽이건 아시아건 그 어디건, 전쟁과 학살의 역사는 뭐라 말하기도 어렵게 끔찍하다. 그런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건 너무 소름끼친다.
책도 영화도 너무 나 사는 곳만 중심으로 알고 살았구나. 영화 보기 직전에 읽은 시인들의 에세이 [영원과 하루]에서 백은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를 읽으면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절망도 더 커질지 모르지만. 모르니까 웃을 수 있는 것보다 알고 슬퍼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시를 읽자.
모르고 웃는 것과 알고 슬픈 것. 어려운 문제다.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조금은 '알고 슬픈 것' 쪽으로 기운 것도 같다.
영화 이야기를 좀 보태자면 양조위, 왕이보 외에는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봤는데 저우쉰이 등장해서 놀랐다. 아니 반가웠다. <적벽대전>에서 그녀와 양조위는 얼마나 둘이서만 아름다웠던가! 이름은 모르지만 처형당한 여성 스파이 장양의 배우도 너무 아름다웠다. 영화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배우들은 너나없이 다 넘치게 아름다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