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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May 10. 2023

[생활일기] 마흔일곱, 앱카드를 처음 써 봅니다.

작년 한 해 도서관에 같이 책을 빌리러 다니던 예슬이가 카드지갑에서 대출증을 줄줄이 꺼내 굳이 대면으로 책을 빌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깔깔 웃어댔다.

"야! 요즘 세상에 누가 대출증을 그렇게 들고 다니냐? 대출반납기 사용하면 편해!"

1년을 얘기했는데도 예슬이는 변함없이 카드지갑에 대출증 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책을 빌린다. 그 1년의 시간 중 어느 날 예슬이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빵집에서 카드가 없어서 돈을 빌리려는 나를 보고 예슬이가 놀란다.

"언니, 삼성페이 안 써요?"

"어..." 작아질대로 작아진 나. 삼성페이는 깔려있지만 카드를 등록해놓지 않아 매번 사용을 못 했다. 이런 날이 있을 때면 집에 가선 하나 등록해야지 하고 까먹은 게 나 역시 1년이 넘었다.


그러다 어제 몸이 찌뿌둥해서 세라젬에 들러 누웠다 가려고 갔는데 또 카드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놀랍지도 않다. 버스 타려고 하는데 카드 없어서 티머니 사용하고, 계산하려는데 지갑 없어서 계좌이체하고, 편의점서는 카카오페이로 계산하고 그렇게 임시변통으로 잘 살아왔기에 이번에도 되겠거니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카드나 앱카드, 계좌이체, 현금만 결제 가능합니다." 였다.  

카카오페이 탈락! 계좌이체 탈락! 온라인 쇼핑을 그렇게 하는데 어쩌다 깔린 앱카드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롯데카드 앱을 만지작만지작 했지만 결과는 불가능이었다. 이런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체험만이라도 하고 가시라고 붙잡았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뒤돌아서 나왔다.


나오면서 혹시나 싶어서 신한카드앱을 열어보니 왠지 될 것만 같은 분위기라서 염치불구하고 다시 들어갔다. 다행히 손님이 적은 날이라 그런지 직원들도 흔쾌히 다시 시도를 해 주었다. 결제가 완료되었을 때 직원들과 내는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됐다!"

어렵사리 결제를 하고선 진이 빠져서 40분 정도 기절한 듯 쉬었다 왔다. 나오면서 직원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앱카드 처음 썼어요. 이게 뭐라고 미개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많이들 쓰시더라구요."

그 '많이'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고, 앱카드 미사용자는 소수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역시 '노약자'나 '임산부'처럼 배려대상이 되었으니 이 직원들은 나를 그런 배려대상을 대하듯 해서 그토록 친절했던 걸까? 역시나 씁쓸함이 느껴진다.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앱카드가 없어서 헤맬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현실적으로는 다행인데, 심정적으로는 서운했다. 왠지 이 생이 다 할 때까지 앱카드를 안 쓰고도 살 수 있었을 기회를 날린 것만 같달까? 이게 무슨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예슬이가 죽을 때까지 대출증을 들고 대면으로 책을 빌리는 태도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똥꼬집같기도 하고 문명에 지배당하려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처럼 보이기도 하다. 순전히 내 속에서의 생각이다. 쇼펜하우어 할아버지가 보시면 칭찬하시겠다. 이깟 걸로도 이토록 오래 '스스로 생각'하다니!  아무튼  일은 기록해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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