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우는 맑은 얼굴로 청춘 드라마를 풋풋하게 장악한다. 소녀들의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최근 중화권의 드라마 중엔 학원물이나 청춘물이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 주인공들의 그 싱그러움 덕분이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싱그러운 남자 배우의 외모는 반할 만 하다. 내 나이쯤 되면 그런 배우에게 앓는 일은 흔치 않지만 그래도 예쁜 건 예쁜 거다. 어떤 배우는 선 굵은 연기로 궁중암투물이나 심리극에서 열연한다. 그 연기력에 드라마 좀 본다하는 시청자들은 매료되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 배우에 대해 자랑을하자면 상대는 갸웃거린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이런 시선으로.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은 이 두 유형에 속하지 않는다. 량차오웨이는 선한 눈망울과 진한 이목구비로 장무기 같은 역할만 어울릴 것 같지만 그의 감정연기는 스펙트럼이 넓어 악역도 잘 어울린다. 훠젠화는 무결점의 고운 얼굴만 봐서는 감정이라고는 있을 것 같이 생기질 않았는데 <화천골>의 백자화는 감정으로 폭발한다. 쉬정시는 어떤가? 세상 이보다 더 진하게 생기긴 어려울 정도로 진한 얼굴이라 충직한 신하나 남성미 있는 역할이 잘 어울릴 것 같지만 그가 인기를 얻은 역할은 좀 순진하고 능청스러운 역할을 펼칠 때이다. 세상물정 다 알게 생겨선 순진하게 군단 말이지? 그래, 량차오웨이도 훠젠화도 쉬정시도 본인이 가진 이미지와 다른 것을 내뿜을 줄 아는 멋진 배우다. 그 배반된 이미지가 내 마음을 가져가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이미지의 배반을 너무 자주 이용하면 그것이 곧 또다른 이미지가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배우에겐 연기의 변신이 중요하고! 량차오웨이가 소시지 입술을 하고 나오다가 순진한 장무기가 되고, 게이가 되었다가, 바람 피우는 남자가 되는 등 다양한 변신을 하는 점은 그가 오랜 세월 탑배우로 추앙받는 이유가 된다. 훠젠화는 그에 비하면 스펙트럼은 좀 좁지만 그래도 나름의 변신을 꾀하는 점이 가상하다. 아마 그렇지 못했던 시절을 지나온 덕분이리라. 그렇다, 쉬정시는 바로 그렇지 못한 시절을 지나는 중이다.
그는 <구주천공성2>에서 대단한 능력자이지만 사랑 앞에서 순진하고 지고지순한 역할을 맡았다. <화천골>의 백자화가 겹쳐보이지만 저 롱펌의 아름다움과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연기로 차별화한 역할인데 이런 쉬정시의 모습을 좋아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지라 이후 자꾸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래도 그렇지 <중자>는 너무 우려먹은 역할이 아닌가?
<중자>를 보고는 '이건 뭐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구주천공성2>에서는 간간히 어른미를 뽐내줘서 '난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닌 나도 소녀 팬들 못지 않게 흐뭇한 표정으로 드라마를 정주행할 수 있었지만 <중자>에서 쉬정시는 어른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쉬정시의 간간한 어른미를 기대한 나로서는 스토리도 <화천골>에 미치지 못하고 연기도 더 좋다하긴 어려워서 중도에 그만 봤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드라마가 <화유리일문>인데, '아 쉬정시가 요즘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뭐랄까 드라마 <사춘기>를 보는 듯 하달까? 표정 좋고 연기 좋고 중지 끝의 점까지도 예쁜 쉬정시여, 어른의 사랑을 보여줄 순 없소?
<독고천하>나 <봉혁>, <위자부>에서 보여준 중후함에서 <구주천공성>, < 언어부>의 조금은 어른 사랑을 거쳐 결국 다다른 곳이 <중자>나 <화유리일문>이라니 쉬정시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모양이다. 점점 순진무구한 로맨스 드라마만 찍는 것이 그가 가진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젠 굳어진 그의 이미지를 너무 활용하는 것인지도. <몽화록>에서 천샤오가 보여준 그런 느낌을 쉬정시가 내준다면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요즘 치솟는 인기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비슷비슷한 다작으로 인기 유지 중인 모양이다. 재능낭비 아닌가? 량차오웨이의 부단한 연기 변신 만큼은 아닐 지라도 다음에 만나는 드라마는 잘 맞는 상대배우와 재능을 살린 로맨스를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아니면 남성미를 살려서 선굵은 역할을 해도 좋겠다. 외모나 연기력으로 천쿤이 하는 역할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의 연기와 드라마 속에서 빛나는 외모(각종 프로필 사진이나 일상 사진보다 드라마 속에서 더 아름다운 배우라고 생각한다. )를 십분 활용하면 좋겠다. 쉬정시여, 순진무구하고 엉뚱한 표정을 짓는 당신의 모습이 이제 차츰 지겨워지나이다! 나를 반하게 하라! 오래 전 드라마인 <독고천하>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