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일주일에 두 번, 각기 다른 선생님께 글쓰기를 배운다. 두 번의 글을 쓰는 건 무리인지라 나름 꼼수를 발휘했다. 다행히 두분의 커리큘럼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기에 하루는 그날 선생님의 안내에 따른 글쓰기를 하고 하루는 써둔 글을 퇴고하는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독후감 쓰는 법도 제대로 안 가르쳐주고는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요약이 뭔지 감상이 뭔지도 모르는 채 나는 책 뒤쪽의 글들을 베껴내곤 했다. 독후감이 무엇인지는 어른이 되고서야 제대로 알았다. 독후감 뿐만이 아니다. 글씨 예쁘게 쓰는 법을 배운 기억은 나는데, 일기나 편지 쓰는 법과 원고지 사용법은 배운 기억이 나는데, 종류별로 글을 어떻게 써야 잘 쓰는지 제대로 배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름 모범생이었는데 말이다.
어른이 되어 책을 읽으며 리뷰들을 쓰며 익혔다. 한때 시인이 되고 싶었기에 시쓰기 합평 모임에 호기롭게 나갔다가 나의 무능만 깨우치게 되었다. 읽는 인간으로서 부단히 쓴 것, 그거 하나 밖에 모르는 글쓰기를 해왔다. 더 늦기 전에 글쓰기를 배우면 좋으련만 '책으로 키스를 배웠어요.'만큼이나 나는 책만 두드릴 뿐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에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장벽이 높았다. 물리적 거리, 비용 문제, 선택의 기준이 없는 점 등. 그러다 우연히 집 가까이 그리고 익숙한 장소에 두 개의 강좌가 개설되어 모원을 하길래 망설임없이 신청을 했다.
일주일에 두 군데의 수업을 듣는 것은 직업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적잖이 부담이 된다. 그런데 이번엔 좀 뻔뻔해지기로 했다. 글쓰는 과제를 밀리지 않고 성실하게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일지도 모르니까. 양희경의 <엄마가 딸에게> 노랫말에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라는 가사가 있다. 성실한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글쓰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작년 내내 혼자 글을 쓰면서 주변 환경이 세워지지 않으면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들이 떠오른다. 브런치나 투비컨티뉴드에 공간을 만들고도 간헐적으로 한 편씩 써내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성실한 건 어려운 일이다.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강제성이 필요하다. 배우들이 입금 후에 몸을 만들 듯, 큰 아들이 딱 숙제만큼만 공부를 하듯 내게도 자의가 아닌 타인의 의지가 필요했다. 그렇게 지금 글쓰기를 배운다. 공교롭게도 지금 아이들에게 논설문을 가르치는 중이라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것이다. 가르치는 일보단 배우는 일이 신 난다. 물론 아이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서 늘 배우는 태도에 대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사람은 배움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내가 아이들 표현에 '반백살'이 되어서야 이렇게 배움에 열심이다. 어제까지 올렸어야 하는 과제는 오늘에야 올렸고, 오늘 읽어갔어야 하는 책은 지금 겨우 읽었다. 그림책이라 다행이지! 배우는 걸 좋아하면서도 이렇게 게으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쓴다. 최소한 게으르지는 않아보이려고! 언젠가는 잘 쓰여진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