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진화한다. 십여 년 전쯤 만연체로 욕을 하는 열살 짜리 아이에게 놀란 후 아이들의 욕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함부로 경계짓지 않는다. 아이들의 귀는 열려 있고, 듣는 만큼 표현할 때 필터를 거치지 않는다. 그걸 깨닫게 된 후로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욕을 하지 말라고만 말하진 않는다. 욕에 관한 동화를 읽어주거나 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등 마음을 건드리려고 하는데 늘 내 뜻대로 되지는 않은 채 결국은 최소한 학교라는 장소와 친구들을 제외한 다른 대상과 함께 있을 때는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동의만 끌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성공한다면 그 해는 괜찮은 해이다.
십여 년 전에 아이들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욕삼아 사용했다. 그래서 인권 교육을 함께 해야 했다. 인식이 생기면 조금은 조심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의 욕은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철없는 어른들 입에서 나올 때가 많다. 그런데 이제는 암환자를 가슴 아프게 하는 욕이 생긴 모양이다. 최근 옆 반에서 도는 욕에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이 있었고, 그 말을 아직 듣기 전인 나로선 철없는 아이들이 또 환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구나 싶어 언짢았었다. 그러다 어제 우리 반에서도 그 말이 나왔다.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반 아이 중에 한 아이가 불쑥 그 말을 내뱉았고 거기에 나는 "엄마가 그 소리 들으면 마음이 무너지실 거야."라고 한 마디 던졌다. 안일한 훈육이었을까? 크게 혼구녕을 냈어야 할까? 하지만 나는 이 아이를 3개월 동안 매일 본 사람이다. 따라서 긍정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 심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니까. 아이의 대답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부드러웠다.
"그래서 엄마가 이 말 하지 말래요. 그런데 전 자꾸 하고 싶어요."
"왜?"
"가슴이 시원해요."
"내가 엄마라면 가슴에 대못이 박힐 것 같은데? 내 아들이 암 걸리는 건 상상도 하기 싫거든. 그런데 내 아들이 그 말을 입에 달고 살면 난 너무 슬플 거 같아."
여기저기 애들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받는 놈'이라고 한 마디씩 보탠다. 아이들을 이렇게 기회만 생기면 들썩인다. 그 들썩임을 잘만 이용하면 좋은 분위기로 끌어갈 수 있다. 아이는 아이들의 반응에 기가 죽어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다. 그래서 살짝 선동을 해 봤다.
"얘가 외아들이다!"
라고 말하니 여자애들이
"남아선호사상 말씀하시는 거예요?"
표적이 나로 바뀐다.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아니,,,,외동이라고!!! 얘가 딸은 아니잖아! 아무튼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소중한 아들이라고! 그런데 저런 말을 쓰면 안 되지!"라고 하니 아이 표정이 좀더 복잡해졌다.
'됐다!'
앞으로 이 아이는 물론 우리반에서 이 말을 쓰는 아이는 없겠구나 싶은 확신이 든다. 물론 그 확신은 배신을 당할 때가 많지만 이런 분위기는 좋다. 나쁜 행동을 나쁘다고 이해하고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뭉터기로 만드는 분위기. 그래서 올해 아이들이 기특하다. 스스로 정화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그건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잔소리를 하는 나의 역할도 있지만(그래서 일부 여학생들은 화장실에서 내 흉내를 내고 뒷담화를 깐다고 한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마음에 빈 공간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빈 공간을 스스로 알차게 채울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당분간 이 아이의 입을 관심가지고 지켜봐야겠다.
사족.
방금도 서로를 비방하는 두 무리의 아이들이 다녀갔고, 그중 한 아이를 붙잡고는(실제로 두 손을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아이는 마치 내가 자기 할머니처럼 말한다고 했지만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금쪽 처방전에 나온 방법을 하나 알려주니 '자기가 금쪽이냐'고 반문했고 나는 또 솔직하게 '딱 아니라고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다른 애들은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거'라고 했고, 그럼 '너도 이미지 관리를 좀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이런 시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예쁜 사람이라 예쁘게 행동하면 좋겠다'는 게 할머니같은 말이구나 아이가 떠난 후에 혼자 생각했다.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이 아이가 더 나쁘게 행동하지는 않는 거였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아이가 좋은 마음과 말을 갖기 위해선 주변에 그 마음과 말을 빚어줄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쉽지 않다. 학교도 너무 바쁘고 가정도 너무 바쁘다. 그래서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는 건데, 그걸 싫다고 하니 아이들의 마음은 늘 곁에 있는 스마트폰이 빚어줄 뿐이다. 좀 덜 바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