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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Jul 20. 2023

안전한 어른

지금 이 순간처럼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때가 있다. 고민이 생기면 다른 사람보다 깊이 새기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일에 몰두할 땐 마치 내게 그 고민이 없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보내기도 하지만 고민을 자각하는 순간부턴 거의 미친 사람처럼 고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럴 땐 아무리 좋아하는 책이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분명 며칠 전까지 재밌다며 여기저기 추천을 해가면서 읽던 책인데 지금은 글자를 읽는데 전혀 흥미가 생기지도 않고 눈길이 간헐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돌아왔다를 반복한다. 내 마음 상태가 책읽기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며칠 전 남편과 양가 아버님들의 팔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티격태격 하다 끝말에 내가 "부모 걱정은 그래도 끝이 있는 거니 자식 걱정보다 낫다고 생각하자." 말을 했는데 말이 씨가 된 듯 바로 그 날 큰아이에 대한 걱정거리가 생겨버렸다. 이런 죄책감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 말 한 마디 탓을 하는 게 편한지 내 방정맞은 입을 탓한다. 입이 아니면 누굴 탓한단 말인가! 미신을 믿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걸까?


낮 동안은 감당해야 할 아이들이 있어 내 아이에 대한 걱정은 잠시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는 여러 할 일이 있었는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빠져들 수 없었다. 내 고민이 이렇게 깊은데 아이의 고민은 얼마나 깊은가를 생각하면 아이가 막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를 걸으니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평상시의 목소리이다. 아직 이 아이도 고민을 건드리지 않은 채 묻어둔 건가 싶기도 하고, 진짜 아무렇지 않은가 생각되면 아이가 나를 닮지 않아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까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 내가 고민을 대하는 방식 말이다. 


내가 나를 들들 볶는 사람이라는 것은 꽤 오래 전에 알았다. 들들 볶는 사람들은 대개 부지런하고 온몸으로 예민함과 분주함을 보여주지만 나는 내 안으로 침잠한다. 고요하게 내 안으로 파고들어 나를 들들 볶는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것도 싫고, 특히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말하게 하는 건 더 싫다. 물론 고민을 함께 나누어서 얻는 효과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경험하지 않은 것도 아니나 그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더 잘 알기에 그저 시간이 흘러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주문처럼 해결되기만을 기다린다. 아니면, 더 깊이 묻어서 내가 자주 닿지 못할 곳까지 밀어넣던가. 한참을 스스로를 들들 볶다가 해결이 될 즈음 다른 사람에게 푸념하듯 털어놓는다. 해결되기 전까진 오롯이 혼자의 몫으로, 해결이 되고난 후에야 공유하는 바보같은 사람이다. 


지금 내가 하는 아이에 대한 고민은 비교적 얕은 영역에 있다. 바로 엊그제 생긴 문제이고 시간이 지나면 곧 해결될 그런 문제. 하지만 내 안의 아주 깊은 곳에는 내 아버지에 대한 고민, 어머니에 대한 고민, 배우자에 대한 고민, 내가 쓰는 글에 대한 고민 등이 순서대로 박혀있다. 언제 해결이 될런지 장담할 수 없고, 해결 자체가 가능한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고민들이 내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있다. 아버지의 팔순이 다가오면서 가장 깊이 박혀있던 고민에 닿았고, 그것이 아이에 대한 고민과 지금 맞붙었다. 결과는 묵은 고민보다는 새로운 고민의 승리였다.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고민이 다시 묻혔고, 남편과 친정어머니와의 갈등 문제도 살짝 묻혔다. 이럴 때면 또다시 미신을 믿는 사람처럼 '내 고민을 없애주려고 내 아이에게 문제가 찾아온 걸까? 내 방정맞은 입을 빌어서?'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죄책감이 든다. 아이에 대한 문제에서만큼은 나는 어떤 희생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기에 내 방정맞은 입은 용서받을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많은 고민들을 스스로 해결할 것이다. 지금껏 나를 들들 볶아오면서 파묻기도 하고 털기도 하면서 4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왔다. 최소한 묻어도 내가 묻고 털어도 내가 털며, 방정맞은 입도 내 입이고 때리는 손도 내 손이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한 신규 교사가 학교에서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망자의 마음을 산 사람들은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만 그가 다른 곳도 아닌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았을 바로 그 공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는 어떤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이 아니라면 보호받지 못할 자신의 고민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 그의 선택을 개인적 문제로 물타기 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어떤 이야기가 그가 생을 마감할 장소로 학교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이길 수 있을까? 자기 삶의 지휘권을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 사람의 무력감과 비참함이 나는 한줄 기사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제 겨우 스무해 남짓 살았고, 배우는 사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된지 몇 달이 되지 않은 이에게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안전함을 주는 대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만 더 견디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은 살아있는 이들의 바람일 뿐이다. 나도 그 나이 땐 지금처럼 고민을 털고 묻는 능력이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곤 했다. 그 나이에도 나는 혼자서 고민을 삭이고 울고 아파했지만 운이 좋게도 내가 해결하지 못할 고민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 그래서 정신을 다른 데로 쏟기 위해 10대 때에도 하지 않은 오빠부대에 가담했고, 모르는 사람들과번개처럼 만나 공연을 보는 동호회에도 들었으며, 술 대신 학업을 선택하여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저 운이 좋았다. 아마 내가 지금도 덕후의 기운이 물씬 나는 것은 그때의 깨달음 덕분이고 그것은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고민을 혼자 느끼고 혼자 끙끙대지만 그것을 가볍게 할 대상을 잘 찾아낸다. 옆에서 보자면 아이의 얼굴은 맑다. 틱틱 대던 사춘기 모습에서 다시 아기가 된 모습이다. 그래도 역시 기댈 곳은 엄마 아빠 밖에 없다는 듯 아이는 온전히 부모에게 자기를 기대어준다. 고마워서 뭉클한다. 


아마 내가 그때 혼자 끙끙 댔던 건 믿을 만한 어른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이가 나와 달리 지금 아무렇지 않은 것은 어쩌면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 것일 지도 모른다. 믿을 만한 어른으로서 내가 든든히 버티고 있으므로 아이는 내 품에서 안전함을 느낀다. "너의 마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믿을 만한 어른을 가지지 못했던 내가 누군가에게는 믿을 만한 어른이라는 사실에 뭉클해진다. 아이에게 나는 무조건적으로 양보할 수 있다. 고민의 무게마저도 내가 다 짊어질 수 있으니 너는 부디 가볍기를. 그 당부와 바람이 내 아이를 넘어 타인에게까지 가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마 하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어른으로 누군가의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가슴 아프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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