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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Apr 28. 2022

바라던 바다

분위기를 타는 서퍼의 삶


#Prologue




언젠가 공개된 장소에 글을 게시하게 된다면 맨 첫 번째로 올릴 글은 '바라던 바다'로 하려고 했다. 처음으로 감명받았다는 장문의 피드백을 받았던 글이기도 하고, 글에서 그려지는 이미지가 나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필명인 류해아도 이 글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다의 아이, 류해아




쌓아왔던 이야기들 중 어느 정도까지 보일 수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이 되지만 일단 해보려고 한다.




이곳은 내가 바라던 바다가 될 수 있을까?






#바라던 바다




흔히 어떤 모임이나 조직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게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사람을 보고 분위기를 탔다고 한다. 분위기가 서프보드라면 나는 가끔 서퍼(surfer)가 된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게 되면 자연스레 그곳은 나에게 바다가 된다. 나는 그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가 될 수 있다.





-




어렸을 때 우연히 타게 된 파도가 서퍼의 길로 이끌었다. 젖은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얼굴로 부는 바람, 해변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파도의 속도감, 이 모든 것이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뒤로  항상 파도를 타고 싶어 했다. 멋모를 때는 눈앞에 바다가 보이면 무조건 파도를 타려고 했다. 그날의 날씨가 어떤지, 바다의 상태가 어떤지 고려하지 않았다. 하늘이 바다가, 바다가 하늘이 되는 경우가 수백 번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난 후에 실력이 나쁘지 않은 서퍼가 되었다. 잘 맞는 해변에서 컨디션이 좋을 때는 파도를 타는 게 너무 쉬운 나머지 보드 위에서 묘기도 부를 수 있는 지경이었다. 그런 날에는 국가대표에 도전해보라는 말도 들어봤으며 심지어 약물 복용 의심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런 바다에서 영원히 파도 탈 수 있기를 바랐다.




안타깝게도 파도를 탈 수 있는 해변은 영구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되면 바다는 어느 순간 밀려온 퇴적물들에 의해 파도가 치지 않는 그냥 물웅덩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파도를 탈 수 있는 바다를 부단히 찾으러 다녀야 했다. 새로운 해변을 찾으러 다닐 때는 어린 시절처럼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다.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천천히 모래사장을 거닐면서 찬찬히 바다를 살펴본다.




그러다가 해변에 머물고 있던 사람이 다가와서 손에 들고 있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황급히 보드를 뒤에 숨기고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한다. 기타예요. 서핑에 미친 이상한 사람으로 손가락질당한 경험이 있어서 새로운 해변에서는 파도를 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일단 감춘다. 몇 날 며칠을 머무르면서 사람들이 만든 바다, 바다를 만든 사람들이 어떤지, 서핑 말고도 다른 즐길 거리가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본다. 그러면서 좋아했던 바다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겁 많은 사람이었기에 그 바다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물에 발도 담그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에 빠지더라도 사람들이 구하러 와줄 거라는, 파도타기에 실패하더라도 조롱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바다에 보드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마음에 들었던 해변에서 매번 파도타기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계속 서핑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에는 잘 해낼 거라는 자신감이 그 바다에서는 생겼기 때문이다. 잘 맞는 해변은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곳이었다. 내가 바라던 바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바다.




파도를 잘 타지 못했던 해변도 한 번 떠올려본다. 그 해변에서 더는 서핑을 할 수 없어 떠날 때는 그 해변이 서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너무 파도를 타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나머지 ‘one man, one wave’라는 룰을 어기고 옆에서 파도를 가로채거나, 원치 않게 보드로 다른 사람들을 상처 주거나, 해변에 있는 사람들을 내 서핑을 구경할 들러리로 얕잡아 보고 있었다. 이렇게 행동한 나에게 서핑 후 해변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환호하며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깐 파도를 잘 탈 수 없었지.




탐색을 마친 뒤 등 뒤에 숨겨두었던 보드를 바다에 띄우고, 파도가 시작되는 바다 한가운데로 헤엄쳐간다. 파도를 탈 수 있는 새로운 바다를 찾은 것 같다. 당분간 이곳에서 파도를 타려 한다.




이곳은 내가 바라던 바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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