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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Oct 17. 2022

너 부자야? 어떻게 독서모임에 21만 원을 태워?(1)

나의 첫 번째 트레바리 모임



지난 몇 달간은 퇴근하면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을 각각 하고 있어서 매주 바빴다. 책 읽고 글 쓰고 발제문에 대해서 생각하고 반복. 내 능력을 과신해서 일을 너무 많이 벌여놨나 싶었다. 불과 일 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변화는 작년 트레바리 가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트레바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책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깐 수업에 필요한 서적들을 읽었을 뿐이고 강제성이 없는 독서 활동은 두 권의 책 (핑거스미스, 7년의 밤) 읽기가 전부였다. 활자보다는 음악, 동영상과 친했고 일상에서 읽는 글자라고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부였다. 책은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나 갖는 취미라고 생각했다. 활동적인 일을 선호하는 성격이기에 정적인 독서가 내 삶에 녹아들 일은 이번 생에 없겠다 싶었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을 보면 의아하기는 했다. 책장으로 가득 찬 집에서 살고 싶다거나 책을 계속 사서 놓을 자리가 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같은 세계의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저 종이 묶음인데 그 안에는 뭐가 있길래 애정을 쏟고 좋아하는 걸까. 딱히 흥미가 생기지는 않지만, 이 고상해 보이는 취미를 언젠가 해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취미로 가지고 있는 일에는 응당 이유가 있을 테니깐.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내게 트레바리를 알려주었다. 주변 카페나 서점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이 있겠지만 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유료라는 점. 그것도 무지무지 비싼. 당시 기준으로는 4개월에 21만 원! 가격을 듣고 마음을 접는 게 맞는데 오히려 혹했다. 열렬히 좋아하는 감정이 없으면 일을 시작할 때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돈이 걸려있는데 어떻게 책을 안 읽을 수 있으며 어떻게 모임을 빠질 수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이 가격을 지불하고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비싸면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생각과 오만 원 4장이 넘는 가격 사이에서 몇 달을 고민하다가 한 모임을 선택하게 되었다. 다른 모임은 독후감을 400자만 쓰면 되는 데 반해 여기는 무려 1,000자를 써야 하는 모임이었다.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독후감 제출일이 다가오자 후회했다. 400자도 아닌 1,000자를 어떻게 쓰라는 것인가. 자소서 1,000자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썼는데... 켜놓은 워드 창에 한 문장씩 써 내려갈 때마다 확인할 수 있는 실력은 처참했다. 거기다가 플랫폼에 올려서 제출까지 해야 하니...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제출 버튼을 누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글도 하나씩 읽어 내렸다. 사람들은 어찌나 글을 잘 쓰는지 내 글이 더 부끄러워졌다. 사람들의 실력도 놀라웠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더 놀라웠다.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했다. 너무 사적이어서 친분이 하나도 없는 내가 읽어도 되는 글인가 싶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꼼꼼히 읽어야 했다. 합평 시간에 멀뚱히 있지 않으려면. 눈을 반만 뜬 채로 글에서 느껴지는 것을 문장으로 정리하려고 애썼다.








기대감 반 두려움 반으로 트레바리 아지트로 향했다. 이미 글로 접해서 그런가. 첫 만남인데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친절하고 따뜻했다. 나조차 업로드하고 다시 보기 힘든 글에서 숨어있는 가능성을 발견해주었다. 글 너머에 있는 나에게도 애정을 담아 건네주는 한 마디 한마디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칭찬받아도 새하얀 거짓말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몰아붙였는데 이런 몽글몽글하고 뿌듯한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고 생각하지 못했던 의견들을 들으면서 감탄하고 또 신기했다. 저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질문에 대해 의견이 있고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한다는 게 굉장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피드백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마냥 좋다고 밖에 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그 느낌을 세분화해서 느끼고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들은 너무나 뭉뚝해서 그들처럼 전달할 수 없었다. 둔하지 않다고 믿으며 살았는데 이런 감각들은 애쓰지 않아서 그런지 발달하지 않은 듯했다. 자신만의 색이 담겨 있는 글과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에 끝에 가서는 긴장이 완전히 풀려 이미 서너 번은 본 사이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모임에는 특별한 미션이 있었는데 일주일마다 글을 한 편씩 올리는 것이었다. 딱히 보상은 없어서 원하는 사람만 글을 올리면 되었다. 페널티가 있어야 무언가를 시작하는 습성이 있는 나였는데도 매주 미션을 해나갔다. 칭찬이 고파서였든 할 말이 많아서였든 생각보다 열심이었고 생각보다 진심이었다. 이번에는 누가 댓글을 달아줄까 어떻게 내 글을 봤을까 기대되는 한 주 한주였다. 그러는 사이 모임에 대한 애정은 나도 모르는 새 걷잡을 수 없게 커져 버렸다. 이 사실을 바보 같게도 네 번째 모임을 앞둔 그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내 마지막 독후감에 안녕을 바라며 잘 지내라는 댓글이 그렇게도 서러웠다. 영원한 안녕을 말하는 것 같아서. 한 달에 한번 많아 봤자 두 번밖에 못 본 사람들에게 이미 너무나도 많은 정을 주었다. 새 학기 반 배정을 앞두고 친구와 떨어지기 싫다고 우는 초등학생 같았다. 이미 그럴 나이는 한참이나 지났는데 말이지.



시간은 시즌 종료를 향해 가고 있었고 달리 방법이 있나 고민하게 되었다. 트레바리에는 연장 기능이 있어서 원하는 사람은 파트너 교체 없이 시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음 시즌 큐레이션도 마음에 들고 모임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결국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신규 회원이 들어온다면 지금 같은 시너지가 나올 수가 있을까 같은 걱정에 이번 시즌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만약 멤버를 충원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트레바리 밖에서 모임을 한 번 이끌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또 다른 걱정은 내가 한 모임을 이끌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 약속 일정을 정리해본 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모임의 구성원으로 했던 일이다. 해본 적도 없는데 제안을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열망과 부담감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했다.  








일단은 4개월의 마무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 롤링 페이퍼를 준비했다. 대학교 때 이후로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오글거리기도 하고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인가 했지만 남는 건 사진과 편지뿐 아니겠는가. 학생들처럼 타원형 테이블에 앉아 진지하게 롤링 페이퍼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 멤버들의 여러 문장을 모아 다시 돌아왔을 때 네 번의 모임은 그렇게 끝이 났다. 못다 한 말들을 해소하기 위해 뒤풀이에 어김없이 참석했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숨길 게 뭐가 있나 싶어서 내 이야기를 술술 풀었다. 회사가 어디고 전공이 뭐고 나이가 어쩌고저쩌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파트너님이 입을 열었다. 오늘 사람들이 많이 안 와서 모임 진행을 잘못하고 있었던 건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절반도 안 되는 인원만 참석하게 되어서 시무룩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술도 안 먹었는데 술자리 기운을 빌려 비밀로 하려고 한 진심을 말했다. 따로 모임을 만들 생각이 있는데 생각 있는 분 혹시 있냐고. 다들 바쁘기도 해서 몇 명 없을 거 같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은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뭔지 모를 중압감이 느껴졌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용기를 냈다. 결과적으로는 과반수가 모이게 되었다.



한번 할 거면 제대로 하려는 생각에 시즌제로 하고 돌아가면서 파트너를 맡아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그런 모임을 하려고 했다. 글쓰기, 독서, 맛집 탐방, 원데이 클래스가 총집합된 그런 모임. 다들 내가 이 정도의 마음가짐인 줄은 몰라서 기획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해서 초반의 기획들은 흐지부지되고 그냥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밥을 먹거나 가끔 줌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시작은 거창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콘텐츠 없이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맨날 나오는 사람만 나오기는 하지만. 달에 한 번씩 만나다 보니 친구보다 자주 만났고, 친구보다 내 근황을 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남보다는 확실히 가까운데 카톡 이외에 연락 방법은 없고 존대하는 관계. 이건 무슨 관계일까. 이제는 학생도 아니어서 모든 약속에 나갈 체력도 시간도 없다. 거기다가 일주일 중에 5일을 일하는 직장인이라 2일밖에 없는 주말이 상당히 귀중하다. 그런 와중에 달마다 시간을 내서 만나러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냥 아는 사람으로이겠는가. 친구지. 결국 우리는 반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계속 볼 사이임을 인정하고 친구가 되었다.  






학생일 때도 그런 적 없었는데 내 일상과 접점이 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해지게 된 것은 트레바리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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