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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Sep 22. 2022

한강에서 카약을 탈 수 있다고?

한강 카약 체험기

#한강에서 카아야아악~?




작년 여름에는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벌써 기억력이 퇴화하나 싶었는데 기억할 만한 일이 없었다. 여름휴가도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쉬었다. 그냥저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해서 올해 여름은 좀 더 다채롭게 보내려고 했다. 여름 하면 역시 물이지. 휴가와는 별개로 수상 체험을 하나 하고 싶었다. 예전에 해봤던 서핑이나 윈드서핑은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거 하나 하려고 강원도나 제주도까지 가기도 부담스러웠고 물에 빠지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체험 하나를 발견했다.



‘한강선셋카약’



세 개의 단어 모두 마음에 들었다. 한강, 선셋, 카약. 구명조끼를 입고 안전하게 배 위에서 노만 저으면 되고 노을 진 한강을 배경으로 한 인생 샷도 노려볼 만했다. 휴양지도 아니고 한강에서 카약 타자고 하면 누가 같이 가주려나 했는데 첫 번째 시도 만에 같이 갈 친구를 구할 수 있었다.  




한껏 기대한 마음과는 다르게 그날은 비가 조금씩 내리는 흐린 날씨였다. 이런 날씨는 카약이 더 잘 뒤집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카약에 올라탔다. 천천히 노를 저으면서 강 한가운데로 다가가자 느낌이 묘했다. 한강은 밖에서 바라봤을 때보다 훨씬 컸고 막상 카약을 타고 나와보니 망망대해에 나와 있는 듯했다. 오고 가며 봐왔던 풍경들이 이렇게 낯설지 모를 일이었다. 항상 강 밖에서 강을 바라봤지, 강에 한가운데에서 주변 대교와 공원을 바라보는 게 처음이어서 그런 걸까. 발 딛고 있던 육지에서 동떨어져 주위가 물로 둘러싸인 환경에 처해있어서 그런 걸까. 조금 전만 해도 반포에 있었는데 몇십 분 만에 서울이 아닌 다른 공간, 21세기가 아닌 다른 시간대, 내가 있던 시공간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뒤로한 채 동작대교 쪽으로 노를 저었다. 강 위를 지나가는 노선을 탈 때마다 꼭 지하철 창문으로 보이는 한강을 넋 놓고 쳐다봤는데 이제는 거꾸로 한강에서 지하철을 쳐다보고 있으니 느낌이 색달랐다. 관점, 방향의 전환은 생각보다 큰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붉은빛의 노을이 구름 사이로 새어 나가고 있으면서 동작대교 위로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다른 방향으로 카약을 타다가도 고개를 돌려 지나가는 지하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뭔가에 홀린 듯이 고개가 돌아갔다. 저녁에 가까워지니 반포대교에서는 무지개 분수 쇼가 시작되었다. 다리 아래로 펼쳐지는 분수에 더해 달빛과 가로등 불빛, 대로 위 자동차 조명이 도시의 밤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느끼고 있는 감정들과 살아 숨 쉬는 듯한 풍경은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기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에 담고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그저 유람선을 탔으면 해보지 못했을 경험들과 발견하지 못했을 풍경들은 노를 한 번 두 번 저을 때마다 마음에 머리에 파문을 일으켰다.





#인스타와 현실의 차이점




솔직히 말하면 카약 체험의 모든 순간이 그리 감성적이지는 않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강인데도 파도로 넘실거렸다. 그 파도를 이겨내면서 열심히 노를 저었는데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모습이 마치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같았다. 카약을 타는 게 직업이 아닌데도 구명조끼를 입고 노 젓는 모습은 몇십 년 동안 반포와 용산을 오가면서 카약을 탄 장인의 모습이었다. 인스타 감성을 꿈꿨지만, 현실은 인간극장이나 생활의 달인이었다. 시간을 내서 카약을 타러 왔으면 여유롭게 탈 법도 한 데 힐링 게임을 하면서도 극한의 효율을 찾는 K-국민이기 때문에 올림픽에 출전한 조정 선수들처럼 미친 듯이 노를 저었다. 힐링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친구와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다른 팀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한 커플은 노를 저을 때 왼쪽 오른쪽 방향까지 맞춰가며 동시에 노를 저으니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카약이 아니라 모터 달린 쾌속선처럼 우리 옆을 쌩-하고 지나쳤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유람선들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10인승 작은 유람선부터 몇십 명은 너끈히 태울만한 큰 유람선들까지 다양한 크기의 유람선들이 돌아다녔다. 유람선들이 지나가면 파도가 치기 때문에 저 멀리서 보이면 얼른 피했다. 사실 파도가 아니더라도 유람선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우리가 ‘구경’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경치를 구경하며 손을 흔드는 걸 수도 있지만 위에서 내려보는 시선은 친근하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가뜩이나 열정적으로 노를 젓는 바람에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더욱 유람선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유람선 운행 반대 방향인 반포 쪽 산책로는 별다른 구조물 없이 강변에 붙어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람선을 피하려고 반포 방향으로 가까이 갔다가는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한테 동물원의 동물처럼 구경거리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유람선에 부딪히지 않으면서 산책자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적절한 위치를 찾기 위해 물 위에서 동분서주했다. 몸이 고생한 경험은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체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했다.





#다시 현실로 로그인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여정의 시작이었던 승강장으로 돌아와서 손에 익었던 노를 직원분에게 건넸다. 승강장에서 육지로 걸어가는 동안 그동안의 멀미가 밀려왔다. 울렁거리는 속과 흔들거리는 몸을 다잡고 걸었다. 바로 전까지 한강에서 카약을 탄 일이 아주 오래전 일인 듯 느껴졌고 꿈을 꾼 것 같았다.  




카페에서 찍은 사진들과 영상들을 봤는데 감성적인 인생 샷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서울에 막 상경해서 처음으로 한 일이 카약 타기인 사람들처럼 사진이 나왔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사진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왔다. 직원분이 찍어준 사진은 더 가관이었다. 풀 메이컵을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이 다 날아 가버려서 초췌해 보였고 마냥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어서 어딘가 모자란 애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는 서로 빵 터져서 쉼 없이 웃었다. 후에 이 사진을 회사 동료분들에게 보여드렸는데 어떤 분은 고등학교 때 찍은 사진인 줄 알았다고 한다.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서 불과 5일 전에 찍은 사진인 줄 몰랐다는 말과 함께. 표정만 보면 5일 전 사진이 아니라 5살 때 사진 같다. 바라만 보아도 웃음을 주는 이 사진은 나와 지인들에게 레전드로 불리며 이 사진을 본 친구 두 명은 얼마나 재밌으면 저런 표정을 짓냐며 카약을 타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정도면 업체에서 커미션을 줘야 할 텐데.





가끔 한강을 보거나 노을 진 하늘을 보면 그때 바라본 풍경들이 생각난다. 내가 느낀 기묘한 감각들은 어쩌면 알아차리지 못하게 찾아온 멀미의 증상일지도 모른다. 이날의 경험은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 익숙하지 않은 느낌들과 감정들. 순간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즐겼던 경험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경험할 수 있을까?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났던 순간들은 다시 한강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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