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 기초 포르투갈어 회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날짜에 일주일 정도 리스본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직항도 없는 머나먼 포르투갈을 여행지로 삼았지만, 여러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여행 준비에 신경을 못 썼다. 계획한 여행을 생각하면서 일상의 원동력을 얻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바쁜 와중에 여행을 가야 하나 싶었다. 일정도 거의 친구가 찾아주고 출발 전까지도 감흥이 없었던 차라 포르텔라 공항에 와서야 내가 외국에 왔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어설픈 영어로 의사소통할 예정이라 포르투갈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주변에서 ‘올라’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인사말이 스페인어와 똑같은 듯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찾아보니 스페인어로는 ‘Hola’이고 포르투갈어로는 ‘Olá’이어서 발음은 같지만, 표기법이 다르다. 여행하면서 들은 바로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유사한 점이 있어서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어를 써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동양인이 스페인어를 하면 당황할 수 있으니, 영어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 (외국인이 동양인만 보면 니하오 하는 느낌이려나). 포르투갈어인 줄 알고 썼다가 나중에 스페인어인 걸 알게 되지 않게 단어를 쓸 때 항상 확인 후 말로 뱉었다. 현지인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불쾌감을 일으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Olá.”
웃으면서 인사말을 건네면 그들도 인사를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눈을 피하기도 바빴지만, 포르투갈에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가게에 들어가면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 한 4일쯤 됐을까. 당혹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친한 사이에서만 ‘Olá’을 쓴다는 것이었다. 물론 외국인이라 이해해 주겠지만 나는 포르투갈에서 K-예의를 보여주고 싶었는걸. 어쩐지 “Olá.” 라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 왜냐면 우리는 처음 본 사이니깐.
그래서 이들은 처음 보는 사이에 무슨 인사를 하나 했더니 ‘Bom dia’ 라는 문장을 쓰고 있었다. 주로 오전 인사로 사용하며 오후 6시까지는 헤어질 때 쓰면 ‘좋은 하루 보내’라는 뜻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가게에 들어갈 때 점원들이 “Bom dia.” 라고 인사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영어식 표기법에 따르면 ‘봄 디아’겠지만 실제 발음은 ㅁ과 ㅇ사이 애매한 발음으로 ‘봉(ㅁ) 디아’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음의 높낮이를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봉, 디아!’라고 하면 원어민과 비슷하게 말할 수 있었다.
“Bom dia”
Hi와 Olá을 쓸 때와는 다른 친밀함이 느껴졌다.
오후와 저녁 인사말로는 ‘Boa tarde’와 ‘Boa noite’가 있었다. 지금이야 외웠지만 상당히 어려운 발음이어서 외우는 데 애를 먹었다. 처음에 외웠던 ‘Bom dia’를 시간대에 상관없이 남발하고 다니는 바람에 두 문장을 많이 쓰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번 써먹었는데 늦은 저녁에 택시를 타고 내릴 때였다.
“Boa noite.”
발음이 안 좋았는지 크게 신경을 안 쓰셨는지 기사님은 “Bye”라고 답했다.
포르투갈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Obrigada’였다. 신기하게 남자가 말할 때와 여자가 말할 때 다른 표현을 썼다. 남자는 ‘Obrigado’, 여자는 ‘Obrigada’. 발화자의 성별에 따라 명사형의 변화가 다른 규칙이 있었다. 지금이야 입에 붙어서 Obrigada로 노래도 부를 수 있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Ob…. 뭐? 이랬었다. 고작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인데도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시내 투어에서 만난 가이드님은 일본어인 아리가또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쉽다는 팁을 주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재 개그인가 싶었지만 결국 Obrigada보다 아리가또가 먼저 떠오르고 말았다. 아리가또 연상법의 부작용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신경 쓰지 않으면 아리가또 악센트로 오브리가다를 말해버린다는 점이었다.
포르투갈은 생각보다 서방의 예의지국인지 하루에 몇십 번씩 사방팔방에서 Obrigado, Obrigada가 들리니 그럴싸한 발음으로 구사할 수 있었다.
“Obrigada!”
주문을 받아주거나 카드를 돌려받을 때 써 주면 흐뭇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Obrigada라고 하면 상대방의 답변은 Obrigada이거나 아니거나 두 개로 나뉘었다. Obrigada 외 답변은 ‘(ㄱ)ㅏ다’ 로 들렸다. 초반에는 친구와 나는 그게 Obrigada를 줄여서 ‘Gada’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감사합니다’를 ‘감사’로 쓰는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천만에요’인 ‘De nada’였다. De가 잘 안 들리고 ‘nada’만 들리니 착각할 만도 했다.
성격이 급한 한국인답게 식사를 마쳤을 때 종업원이 저 멀리서 다가오면 알아서 커트러리를 접시에 올려서 정돈했다. 한 곳에 가지런히 놓인 빈 그릇을 가져가면서 종업원은 이렇게 말한다.
“Obrigada!”
“De nada.”
누군가 핑하고 말을 던지면 퐁하고 다시 돌려줄 말을 알고 있다는 게 뿌듯했다. 일방적이지 않고 정말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느낌이 좋았다.
포르투갈어를 알아가면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따봉’이 포르투갈어였던 점이었다. 유행 지난 신조어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이드님이 따봉은 있어도 따따봉은 없다는 농담했었는데 뜻은 ‘Good’*이라고 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식당이나 어디서든 따봉이라고 외쳐주라면서. 오호라. 이렇게 외우기 쉽고 친숙한 단어가 포르투갈어라니. 꼭, 자주 써먹어야겠다 싶었다.
가이드 투어가 끝나고 타구스강이 보이는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문어 샐러드와 조개찜, 감바스를 먹고 있는데 종업원이 와서 음식은 어떠냐고 영어로 물어왔다. 드디어 따봉을 써볼 좋은 기회라고! 잠깐의 머뭇거림을 뒤로 하고 아는 걸 꼭 티 내겠다는 마음으로 엄지손가락을 들고 외쳤다.
“Tá bom!”
그러자 그는 너털웃음을 짓더니 포르투갈어로 뭐라 뭐라 긴 문장을 말했다. 그래서 (ㅇㅁㅇ?) 이 표정으로 넹? 저희는 포르투갈어 못해요. 라고 하니 ‘Tá bom’ 하길래 포르투갈어를 잘하는 줄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테이블을 떠났다. 친구와 나는 실전에서 써먹었다는 것에 재미를 느끼면 눈을 맞추며 웃었다. 그 이후로도 만나는 사람이 음식은 어떠냐, 리스본이나 포르투갈은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드릉드릉하면 눈을 빛내며 “Tá bom!” 이라고 외쳤다. 그럴 때마다 현지인들은 웃음을 참는 듯하다가 하하하 웃어버리곤 했다. 그들이 좋아할 줄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좋아할 일인가 싶었다.
그래서 근교투어를 하는 날 만난 가이드분에게 이 일화들을 얘기하며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가요? 라고 하니 선생님은 이렇게 답해줬다. 포르투갈어를 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은 외국인이 적절한 상황에서, 정확한 발음으로 따봉이라고 외치니 귀여워서 그런 거라고. 한국에 온 서양인이 식당을 나가면서 수고하십시오 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낀 완벽함이 만들어 낸 웃음. 이 사실을 알고 현지인들을 웃기려고 더욱 Tá bom을 쓸 수 있는 상황을 기다렸다.
‘제발 말 걸어 줘… 내 여행이 어떤지 물어봐 줘…!’
좀 쉬운 포르투갈어가 있는지 찾아봤을 때 ‘Viva’가 눈에 띄었다. 만세라…. 처음 보는 사람한테 쓸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은 기억해 뒀다. 포르투갈 마트에는 착즙기가 있어서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맛볼 수 있었다. 구매하는 방법은 마음에 드는 크기의 병을 고르고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를 사용하듯이 레버를 당기면 기계가 돌아가면서 레버 아래로 오렌지즙이 콸콸 나온다. 여행지에 소소한 오락거리를 발견한 느낌에 볼 때마다 오렌지 주스를 사 먹기로 마음먹었다.
쇼핑하러 간 백화점 지하에 있는 마트에서 두 번째 착즙기를 볼 수 있었다. 신이 난 친구와 나는 어제와 똑같이 레버를 당겼지만 오렌지 주스 몇 방울만 똑똑똑 떨어질 뿐이었다. 여러 번 용을 쓰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주변에 있던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기계 앞으로 와 몇 번 확인하더니 레버를 밀었다. 당기는 게 아니라 밀어야 하는 거였다. Pull이 아니라 Push. 직원분의 한 번의 손길로 막힘없이 오렌지 폭포수가 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Viva가 떠올랐다. V로 시작하는 단어여서 그런지 링피트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깬 캐릭터가 두 손을 높이 들며 외치던 “빅!토리-!”가 기억났다.
“Vi~va!
그러자 그는 웃어줬고 나는 주스로 꽉 찬 병이 만족스러워 한 마디 덧붙였다.
“Tá bom!”
주스를 산 뒤 옆쪽에 있는 과일 코너를 향했다. 한국에 비해서 과일이 싸고 맛있다고 들어서 망고를 사기로 한참이었다. 망고를 하나 집어 들어 앞에 있는 점원에게 건네자, 무게를 달아주었다. 그러면서 물어왔다. 리스본은 얼마나 있었어요? 어때요? 좋아요? 캬. 또 바라던 순간이 왔다.
“Tá bom!”
그러자 점원은 면전에서 웃는 게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약간 돌리고는 크게 웃었다. 이번에도 통했다. 아까 착즙기 사용을 도와줬던 점원이 언제 왔는지 박스를 정리하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말을 걸어왔다. 한국이라고 하자 자기는 한국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한국인을 만난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나와 친구는 동시에 어떤 영상을 봤는지 물었고 점원은 자신의 넷플릭스 구독 화면을 보여주면서 시청 중인 더 글로리와 오징어 게임 목록을 보여주었다. 한국인인 나도 보지 않은 한국 드라마를 태평양 건너 사람들도 좋아해 준다는 게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Bom dia”
가격표가 붙은 망고를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점원에게 인사를 해준 후 마트 투어를 계속했었다.
귀국하는 날 제일 아쉬웠던 건 더 이상 포르투갈어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입에 잘 붙었는데. 한국에서도 쓸 수 있기야 하지만 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포르텔라 공항 면세점 점원에게 마지막 포르투갈어를 말하고 돌아서니 6박 7일의 여행이 진정으로 끝났음을 느끼게 되었다.
‘Até já, Portug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