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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Mar 27. 2024

영혼을 위한 콩나물국

1인 가구의 주말 식사

주중에는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챙기지만 회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말에는 밥을 신경 써야 한다. 주말 아침은 누룽지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적으면 한 끼 많으면 네 끼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 구매한 날부터 일주일 이내 음식을 모두 먹으려면 냉동이나 레토르트 식품만 사야 하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만 해도 물린다. 질리는 건 둘째 치고 사실 뜨끈한 국물을 너무 먹고 싶다. 



건강에는 안 좋다지만 국이 없으면 목이 말라가는 느낌에 밥을 넘기기 불편해진다. 점점 양식을 먹지 않는 이유도 국물과 관련이 있다. 서양식에는 영혼을 정화해 줄 국물이 없다. 수프는 국물이 아니다. 국물을 내놔라. 국물. 그렇다고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영 떙기지 않는다. 맑디맑고 맑디맑고 맑디 맑은 국물. 나에게 맞는 국물은 콩나물국이었다. 혼자 살면 챙기기 어렵다는 식이섬유도 있고 순두부도 추가하면 탄단지가 완벽한 메뉴가 된다. 재료도 콩나물과 순두부 한 봉지가 다이기에 동네 편의점에서 사천 원만 쓰면 준비 끝이다. 



물 1리터에 반을 자른 순두부를 퐁당 넣는다. 순두부가 모양을 잃어버려 비지처럼 으깨지면 국물이 탁해지니 순두부를 자를 때 심혈을 기울인다. 끓지도 않은 물에 순두부를 먼저 넣는 이유는 속까지 따끈하게 하면서 간도 베게 하려는 나만의 방법이다. 냄비에 불을 올리고 연두를 아빠 숟가락으로 6숟가락 정도 넣는다. 이 정도면 콩나물국이 아니라 연두국 아니냐고? 그렇다. 사실 연두국이다. 영혼을 달래줄 시원함은 연두가 끌어내 준다. 소금만으로 간한 콩나물국은 MSG에 쩔어있는 MZ의 혓바닥을 만족시키기에 너무 맹탕이다. 가성비 측면에서도 콩나물 한 봉지로 진한 국물 맛을 내면서 양을 불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다음 소금 반 스푼 정도 넣고 1차 간을 끝낸다. 연두에 누워있는 순두부를 가스 불에 올려놓고 채반을 꺼내서 콩나물을 흐르는 물에 씻어준다. 귀찮아서 콩나물을 다듬지 않는다. 냄비에서 팔팔 끓은 물에 물이 튀지 않게 조심히 콩나물을 넣는다. 콩나물이 잠기지 않으면 자박자박할 정도로 물을 보충해 준다. 콩나물 때문에 온도가 낮아진 국물이 다시 끓기 시작하면 간을 본다. 자극적인 맛을 더 원하면 연두 2스푼을 더하고 간이 부족하면 소금 반 스푼을 더 추가하고 감칠맛이 부족하면 간장 4분의 1스푼을 더한다. 참치액이 있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데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 나에게는 사치다. 



콩나물을 데친다는 느낌으로 아삭함이 살아있을 정도로 익힌 다음에 국그릇을 꺼낸다. 콩나물을 건져내고 국자로 순두부를 잘라 덩어리 일부를 국물과 함께 뜬다. 국물을 뜰 때는 남아있는 건더기와 국의 양을 가늠한다. 해동한 밥과 본가에서 가져온 김치를 반찬통 채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식을 동안 숟가락으로 국물 한 모금을 먹어본다. 키야. 이 맛이다. 먹지도 않은 술이 해장 되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콩나물만 남을 듯해서 좀 전까지 국물을 담았던 숟가락에 순두부를 올려놓는다. 후후 불 때마다 표면이 일렁이는 순두부를 입에 넣어본다. 간이 잘 베였다. 맛보기를 끝낸 다음 밥을 떠서 본격적으로 식사를 한다. 밥보다 국물 소진량이 빨라서 중간에 국을 한 번 더 리필한다. 김치와 마지막 밥 한입으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널브러져 앉는다. 자주 먹는 음식인데도 질리지 않는다. 당분간 또 콩나물국으로 주말을 채우지 않을까.



날씨도 좋고, 할 일도 있어서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왔다. 허브차와 함께 시킨 딸기 케이크가 절반 정도 먹으니 물린다. 빵 해장이라는 말을 듣고 그게 뭐야 싶었는데 지금에서야 이해가 간다. 나온 김에 저녁까지 해결할까 싶어 메뉴를 생각해 보는데 딱히 끌리는 게 없다. 마라탕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 느낌이 아니다. 토요일에 다 먹어버린 콩나물국이 떠올랐다. 더 많이 만들어 둘 걸 그랬나. 벌써 일요일 저녁이라 다시 만들기도 애매하다. 아 국물 마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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