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 먹기 힘드네
웨이팅은 MZ를 잡기 위한 마케팅이라는 말을 들었다. 트민녀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 시류에 맞게 순댓국 웨이팅에 합류했다. 저녁이라고 보기 애매한 오후 5시 반이었는데... 런던베이글뮤지엄도 아니고 두바이 초콜릿도 아니었다.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을 순댓국 파는 집일 뿐. 음식점 앞에 있는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단체로 최면에 걸린 걸까. 순댓국과 비 냄새가 섞인 거리에서 이 상황을 이해하려는 사이 벌써 5분이 지났다. 이제는 25분 남았다. '웨이팅'을 해서 '국밥'을 먹는 나는 MZ세대인가, X세대인가.
얼기설기 검은색 자음과 모음이 섞여 있는 대기 목록에서 내 이름이 몇 번째인지 세어보았다. 13팀, 36명. 일부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음식점 앞에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적어 보였다. 눈으로 사람 수를 헤아리기를 마쳤을 때 오른편에서 유쾌하지 않은 톤에 목소리가 들렸다. 이 순댓국은 꼭 먹어야 한다는 여자와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자는 저녁 메뉴로 순댓국 외에는 고려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고 남자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입술을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각자의 의견만 말하고 서로를 설득하지 못한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이어졌을까. 마뜩잖아하는 상대방과 음식을 먹어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여자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크고 작은 무리를 지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탈자가 생겼다.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늦게 왔기에 내 순서는 여전하다. 신은 나의 편이 아니었고 아직도 15분이 남았다.
앞으로 7팀, 18명이 순댓국을 먹는다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저 사람들처럼 나도 뜨끈한 국물을 맛볼 수 있다. 아직 내 앞에서 포기자가 나오지 않았다. 직원이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매장 앞 리스트에서 이름을 부른다. 2명 송, 1명 강. 새롭게 부여받은 닉네임을 낯설어하지 않고 부르는 족족 본인의 존재를 알린다. 이곳의 룰을 따르기 위해 나도 잠깐은 ‘1명 류’가 되기로 한다. 이 와중에 한 사람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포기하는 게 맞나? 하지만 20분이라는 기회비용이 떠올랐다. 이 시점에서 다른 메뉴를 찾고 음식점으로 이동하는 일도 20분이 걸릴 테다. 웨이팅 순번을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 이상하게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습기 가득한 바람이 손등을 스쳤다.
7명 허. 그들은 누구인가. 해가 지지도 않은 이 시간에 회식하려는 직장인들인가. 한 번에 자리가 나기 힘든 음식점에서 단체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모인 것일까. 언짢음이 담겨있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그들의 모임명이 불렸다. 하지만 일행 중 일부가 아직 오지 않아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3명 최가 입장했다. 웨이팅 어플처럼 얄짤없이 대기 취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댓국집의 너그러움 때문에 나는 3명 김, 1명 박, 2명 임과 함께 등받이 없는 간이의자에 앉아 있다. 김, 박, 임, 류. 모두 끈기 있는 자들이었다.
순서가 다가올수록 회전율이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몇몇 테이블 위에 녹색 병과 수육이 보였다. 긴 기다림이 이해가 갔다. 그사이 내 뒤에도 여러 성씨가 각자만의 사연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었다. 25분이 지났어도 이 근방에 사람 수는 여전하다. 그동안 3명 김, 1명 박을 포함해 29명이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1분에 1명 이상씩 대기자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제 2분 정도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다. 2명 임. 내 위에 적혀있던 이름이 호명됐다. 앉아 있던 의자에 삐걱거림이 신경 쓰였다. 한 테이블만 더 빠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