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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Apr 28. 2022

아버지에게서는 항상 신나 냄새가 났다

아버지와 나


#Prologue




글을 쓰던 와중에 너무 내 이야기만 썼나 싶었던 적이 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해 쓴다면, 그 대상은 당연히 가족이었다. 나를 제외한 3명 중 누구를 쓸까 고민도 없이 아버지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나 동생도 마찬가지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도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글로 써 내려가기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인칭으로 쓰기에는 버거워서 좀 더 담담하게 쓸 수 있게 3인칭으로 써 내려갔다. 솔직하게 써야 이 복잡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아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창피한 감정들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이 글은 어느 정도 나의 치부를 담고 있는 글이다. 글을 완성하기까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도 흘렸지만, 다 쓰고 나니 무언가 한결 후련해졌다.







#신나




그에게서는 항상 약품 냄새가 났다. 냄새는 입는 옷뿐만 아니라 그가 지나간 공간에도 자취를 남겼다. 냄새로 그가 엘리베이터를 탔는지 안 탔는지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냄새는 그의 자가용에 특히 짙게 배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아이들은 차를 탈 때마다 칭얼거렸다. 차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입으로 숨을 쉬며 코 막힌 목소리로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잠깐의 환기로는 지울 수 없는 그 냄새에 그의 아이들은 멀미가 나 잠을 잤다. 그의 딸은 주유소 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페인트 냄새 같기도 한 이 냄새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자신의 엄마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것이 ‘신나’ 냄새라고 했다. 그의 아이들은 차를 탈 때만 맡는 냄새를 그는 일하는 내내 맡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 대학교에 입학한 그의 딸은 유기화학 실험실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그의 딸은 그 시절 말통에서 에탄올을 옮겨 담을 때마다 전날 먹지도 않은 술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느낌에 매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침마다 잠깐 맡았던 약품 냄새에도 쉽게 비위가 상해 그녀는 유기화학의 길을 접었다. 그의 무던함을 그의 딸은 물려받지 못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딸과 다르게 냄새에 민감하지 않은 걸까?




그는 신나 냄새를 한 주는 밤에, 한 주는 낮에 맡으며 일을 했다. 야간, 주간의 개념을 모르는 그의 아이들은 ‘이번 주는 아버지가 새벽 5시에 나가는구나.’, ‘이번 주에는 오후 5시에 일을 하러 가는구나.’ 하며 야간과 주간의 의미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격주마다 바뀌는 생활 리듬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는 술을 가까이했다. 잠이 들기 어려운 날이면 식사에 소주 한 병을 곁들였다. 반주라고 하기에는 제법 무거운 술상이었지만 소주 7잔 정도는 되어야 자신의 고된 육체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의 아이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아버지라는 종족이 존재하여 그들에게 2교대쯤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아침에 5분 일찍 일어나기도 어려우면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그의 고단함을 눈치채기에는 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의 딸은 교대 근무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입사 후 3교대를 하는 동기가 생기 없어진 얼굴로 요즘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걱정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종족이 아닌, 그녀와 같은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몸으로 어떻게 2교대를 30년 넘게 했는지, 무슨 마음으로 일터에 나갔을지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최근 이직을 했다. 그는 이번 연도 자신의 사주에 이동수가 있을 줄은 몰랐다. 전에 다니고 있는 직장이 자신의 마지막 직장이라 생각했다. 은퇴 후에는 자신의 아내와 시골에 내려가 조용히 살려고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 내려진 인원 감축으로 인해 은퇴를 몇 년 앞둔 나이에 이직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일을 그만둘 법도 한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성한 곳이 없는 몸으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적지 않은 나이에 이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의 딸은 마음이 심란했다. 자신의 비싼 학원비 때문에 아직도 노후 준비가 안 된 걸까, 자신이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졌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밥벌이에서 자아실현을 외치는 자신이 너무나도 사치스러워 보였다.




그가 이런 힘든 일을 아직도 하는 건 가족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는 자신의 아내뿐이었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독 예뻐했던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은커녕 차갑기만 했다. 어렸을 때는 자신의 아버지가 생산직이라는 치기 어린 마음이었다면 성인이 된 지금에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가 주었던 사랑이 자신이 원했던 종류의 사랑이 아니었음에 대한 어리광일까. 그의 인생의 고단함은 자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그녀는 이제 그가 자신의 딸과 처음 만난 나이가 되었다. 그의 딸은 자신이 나이를 먹는 만큼 그도 나이 먹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수십 년간 움직이지 않았던 입과 발을 움직이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그녀는 혼자 있는 집 안에서 짙은 신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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