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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May 09. 2022

OO대 송혜교

노래방 에피소드



A지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많지 않았다. 돈이 넉넉하지도 않았지만, 문화생활을 즐길만한 인프라가 부족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운동을, 대학생 때도 다니지 않던 피시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 학교 근처에 방학이 지나면 코인 노래방이 생긴다는 희소식이 들렸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끼는 없지만, 흥은 많은 내가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가 노래방가기였으니깐. 학교 근처라고 해도 걸어서 40분이나 가야 코인 노래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탈 수 있었지만, 그 돈이면 9곡을 부를 수 있는 돈이었기에 마실이나 나간다는 생각으로 매번 걸어서 코인 노래방을 갔다. 정말 지독한 노래에 대한 사랑이었다.




시장에 있는 노래방은 10개 정도의 부스가 있는 작은 영업장이었다. 시장 한 귀퉁이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 이층에 다다라서 왼쪽 문, 그곳에 코인 노래방이 있었다. 노래방에 도착하면 만원을 오천 원 한 장과 천 원짜리 다섯 장으로 바꾼 후, 그중 천 원으로 생수 한 병을 산다. 그 생수는 앞으로의 두 시간 동안 생명수가 될 물이었다. 생수 한 병을 가지고 자리를 잡아본다. 노래를 부르기 전부터 벌써 신이 난다. 마이크에 가리개를 입히고 오천 원 지폐를 넣는다. 천 원으로 다섯 장을 각각 넣으면 15곡이지만, 오천 원을 한 번에 넣으면 17곡을 부를 수 있다. 교환한 지폐 나머지를 노래방 기계에 올려놓고 사놓은 생수를 까서 한 모금 한다. 이 한 모금으로 내 육신에 스테이지에 오를 준비를 하라고 알린다. 산뜻하게 발라드로 시작해서 ‘노래는 신나야 제맛이지’라는 신념에 따라 BPM 100 이상짜리 노래들을 주로 불렀다. 그럴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아이돌 노래도 개의치 않고 불렀다. 거기에 90년대 노래들도 잊지 않았다.



-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다만 이른 시간에 갔던 건지, 방학이어서 그런 건지, 노래방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만 눈에 띄었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알바생과 머쓱하게 인사를 했다. 들어가면서 보니 이미 두 명 정도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다른 방들은 환기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였다. 최대한 구석에서 부르고 싶어 카운터에서 먼 화장실 근처 부스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노래가 잘 들렸다. 열창하며 노래를 부르던 어느 순간 갑자기 노래방에 나 말고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하지만 노래방에 오면 꼭 부르고 싶은 만큼 불러야 마음 편히 갈 수 있기 때문에, 평소와 같이 신명 나게 흔들어 재꼈다. 내 무대가 오천 원이 허락한 마지막 곡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내가 있는 부스의 문을 두드렸다. '아는 사람은 여기 없을 텐데' 생각하면서 눈을 문에 고정했다. 문이 반쯤 열리고 노크를 한 사람이 문에 기대어 얼굴을 비췄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의아하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저기... 서비스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그 순간 다른 어떤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몰려왔다. 이 사람 내가 노래 부르는 거 다 들었겠구나, 보니깐 노래방에 나밖에 없어서 더 잘 들렸을 텐데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창피하다는 생각보다 입이 더 빨랐다.





“ㅇ...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Aㅏ. ‘얼마나’에 ‘ㅇ’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내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손보다 입이 더 빨랐다. 정말 공포의 주둥아리였다. 창피함을 모르는 인간 같으니라고. 나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되물었을 것이다. 그전까지 무아지경의 세계에 있었던 흥분감이 공짜로 노래를 더 부를 수 있다는 흥분감으로 바뀐 얼굴이었겠지. 원빈과 송혜교가 나오는 가을 동화 드라마가 생각났다. 무슨 가련한 운명의 여자 주인공도 아니고, 저런 문장을 내뱉을 수 있는 건지 머릿속이 의심스러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구체적인 숫자를 말했겠으나,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 받고 싶어 대답 대신 알바생에게 되물어버렸다.





“2곡…?”





‘에이 뭐야 고작 2곡으로 선심 쓰듯이 말하다니’라는 뻔뻔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얼른 지우고 알겠다고 했다. 알바생이 문을 닫고 나간 뒤 이게 뭔가 싶었다. 화면 위에 남은 곡 수가 2곡으로 바뀌었다. 이 노래방 안에 알바생과 나만 있어서 내 노랫소리가 안 들리게 할 수는 없지만, 멜로디와 마이크 성량을 최대한 줄여봤다. 웃긴 건 계속 창피해하면서도 그 2곡을 야무지게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카운터를 향해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도망치듯이 노래방을 나왔다. 뭔지 모를 얼굴의 화끈화끈함이 느껴졌다. 서비스 2곡으로 알바생한테 놀림을 당한 건가 싶었다. 학교 커뮤니티에 ‘코인 노래방녀’ 이런 식으로 올라오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노래방에서 불렀던 노래의 쿵쿵거리는 비트는 내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래의 비트는 집까지 나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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