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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Aug 15. 2022

거 누군데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옵니까?

벌레 퇴치기(1)

#거 누군데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옵니까?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온 후, 한동안은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잤다. 매트리스가 배송되는 날이 입주일보다 뒤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침대 프레임을 방 한구석에 덩그러니 둔 채 2주일이 지난날 매트리스가 도착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면서 사은품으로 도착한 방수커버와 베개 커버는 바로 사용하지 않고 세탁기에 넣었다. 매트리스는 한눈에 봐도 무거웠기 때문에 커버가 뽀송하게 다 말랐음에도 매트리스에 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루기를 몇 날 며칠, 도저히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오늘은 꼭 침실 정리를 해야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매트리스를 들쳤다.



그때-



은은한 주황빛 조명에 물든 벽 위로 시커먼 물체가 드러났다. 다리는 더럽게 많았으며 머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더듬이가 솟아있었다. 갑작스러운 매트리스의 이동으로 그(?)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나와 그는 당황한 채 매트리스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날벌레는 잡아봤지만 저렇게 두툼한 벌레는 잡아본 적이 없었다. 본가에서 살 때는 부모님이 기숙사에서 살 때는 룸메 언니가 잡아줬지만 이제는 그들 아무도 곁에 있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했다.




휴지는커녕 두꺼운 물체로 내려쳐서 잡는 것도 못 할 정도로 벌레가 무서웠다. 죽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가 상상이 가서 끔찍했고 사체 처리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는 일이었다. 직사각형 몸통에 다리가 많고 더듬이가 긴 벌레. 나는 그를 지네 (후에 지네가 아니라 그리마로 밝혀졌다.)라고 판단했다. 바퀴벌레가 아니어서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리가 많으면 무서웠다. 보는 것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몸이 간지러웠다.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청소기로 빨아들이기. 



로봇청소기를 들여놓고도 무선 청소기를 산다는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과하지 않고 딱 알맞았다. 얼른 다른 방에 있는 무선 청소기에 헤드를 벗겨낸 후 청소 관을 그에게 조준하려고 벽을 봤는데! 그가 없어졌다...  Aㅏ. 제길. 그새 사라졌다. 매트리스를 밀어서 벽과 매트리스 사이, 침대 프레임 사이를 뒤적거리며 애꿎은 틈새 청소를 했다. 혹시 모르지 않나. 이만하면 틈에 숨어있었어도 진즉에 죽었겠지 하는 얕은 생각으로 청소기를 갖다 놓으려는 찰나 침대 헤드레스트와 벽 사이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똑똑한 녀석.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쪽에 은신하고 있었다. 얼른 청소기 머리를 그에게 다시 겨냥했다.



‘위이잉이이잉-’



내가 청소기에 전원 버튼을 누른 게 빨랐을까 그가 도망친 게 빨랐을까. 내가 너무 늙어버린 탓에 벌레 따위에게 피지컬이 밀려버린 걸까.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어 잘 처치했다는 생각은 청소기의 빈 먼지 통을 보고는 산산이 조각났다. 더 이상 그를 추적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불을 주섬주섬 챙긴 채 침실 방문을 닫아버렸다. 당분간은 이 방을 버려야겠다. 닫힌 문 아래쪽으로 틈이 있었지만 잠깐 대치하던 사이에 관찰한 결과 그의 몸집으로는 이 틈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틈을 확인하느라 젖혔던 고개를 들며 누구한테 그의 퇴치를 부탁할지 고민이 되었다.





#집들이는 핑계고 사실은...




이 오밤중에 벌레 잡아달라고 부를 사람이 근처에 없어서 주말에 친구를 불러야겠다 싶었다. 부탁할 후보로 최근에 집들이하느라 우리 집에 들렀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카톡을 켜 집들이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집에 벌레 나왔어. 벌레 퇴치 겸 집들이 2차전 하자.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돼?’



‘무슨 벌레인데? 근데 나 이번 주말에 본가 내려가야 해. ㅠ’



‘그냥 휴지로 잡아. 나도 부모님 뵈러 가야 함.’



왜 우리 집에 벌레가 나온 주말에 친구들은 어디론가 가야 하는 걸까. 얘네들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이번 주에 집들이를 빙자한 벌레퇴치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지었다. 탈출구라고 여겼던 방법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하는 찰나 한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파이팅’



파이팅이라는 말이 그날따라 얄밉게 느껴졌다. 약 올리는 건가. 벌레 잡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응원은 왜 해줘. 그건 그렇고 언제쯤 침실에 들어갈 수 있을까... 다른 방에는 그의 친구들이 없기 바라며 잠이 들었다.





#제2차 (방구석) 대전




굳게 닫힌 침실 문을 바라볼 때마다 공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방 한쪽이 막혀있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호기심에 문을 열었다가 그가 팍 하고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쓸데없었다. 방문을 닫았으니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일상생활을 했다. 한바탕 소란이 몇 달 전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조명을 켰을 때 거실 창 옆 벽에서 또 그가 나를 맞이했다. 며칠 전 그가 방에서 빠져나온 걸까 새로운 그의 등장일까 고민했다. 빤히 보고 있자니 무수한 다리에 눈길이 가면서 다시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상황에서 잡념은 사치였다. 얼른 그를 잡아야 했다. 방으로 들어가 지난번과 같이 청소기를 가지고 나왔다. 청소기 헤드를 빼면서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굳은 결심을 했다. 내가 더 빠르기를 바라며 청소기를 겨냥한 후 청소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이이이이잉-‘



무선 청소기에 흡입력이 약한 건지 그가 센 건지 내가 느린 건지 그가 빠른 건지 그는 한번에 잡히지 않았다. 여기서 또 놓치면 거실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의 이동 경로를 끈질기게 따라가면서 청소기를 초강력 모드로 바꿨다. 청소기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냈다.



‘삐이이이이잉이이잉-‘



지난번 전투와는 다르게 이번 장소는 숨을 곳이 없는 벽면이어서 결국 그는 벽면을 기어 올라가다 그르렁거리는 청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먼지 통 안에서 여러 번 구르다 청소기 내부 이곳저곳에 부딪히게 해서 숨통을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사실 이렇게 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었다.  



그가 언제 죽을지 하다못해 언제 정신을 잃어버려 먼지 통에서 얌전히 잡혀있을지 계속해서 쳐다보다가 나 자신이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인간이 아닌 벌레라지만 생명이 꺼져가는 걸 지켜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못 할 짓이지만... 내가 살아야 했다. 어쩔 수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합리화하다가  먼지 통에서 머리카락들과 왈츠를 수십 번 추고 난 후 움직임이 멈춘 그를 발견했다. 몇 분 동안 돌아가던 청소기 전원을 끄고 거실 구석에 짱박아두었다.




이렇게 2차 전을 마무리한 후에 놀란 가슴을 달래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오피스텔에 살지 더 넓은 곳에 살겠다고 빌라에 온 게 잘못이었을까. 혼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그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그러다가는 결국에는 이런 모지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벌레 잡아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 



현재 상황으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데 이 난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침실에 있는 그와 먼지 통에 잡혀있는 모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마리가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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