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노숙
새벽 4시 반, 공항에 도착했다. 출발까지는 아직 네 시간이 남았다. 혹시나 비행기가 나를 두고 갈까 봐, 차라리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마음 편하다.
공항은 새벽을 닮았다. 새벽이 밤과 낮 사이에 머무르듯, 공항은 떠남과 도착 사이에 있다. 새벽이 어제와 오늘의 경계라면, 공항은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틈이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는 '곧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고, 병원 대기실에는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순서가 있다. 하지만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는 다르다. 날씨, 기계 결함, 알 수 없는 사정들이 언제든 계획을 바꿔놓을 수 있다. 공항의 시간은 늘 불확실성을 품고 있다.
창밖 활주로에 점점이 박힌 불빛들. 이륙하는 비행기의 후미등이 점점 작아져 결국 어둠과 구분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불안과 설렘으로 눈을 떼지 못한다.
인도네시아, 밤 11시. 친구는 나를 공항 앞에 내려놓고 떠났다. 새벽을 하늘 위에서 맞는다. 왜 인도네시아 비행기는 꼭 이 시간에만 있는 걸까. 그건 내가 싼 항공권을 골랐기 때문이다. 가볍게 웃으며, 쌀국수 한 그릇을 비운다.
아이슬란드의 새벽, 얼어붙은 거리를 전전하며 동이 트길 기다렸다. 새벽 출발 비행기인 관계로 과감히 숙소는 생략했다. 크리스마스였다.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지만, 그것과 나의 체온은 별개였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왔지만, 그 이후로 나는 추운 나라를 여행하지 않는다.
이스탄불의 새벽, 환승 게이트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린다. 이번엔 정말이지, 진짜 나를 두고 가기 직전이다. 환승 시간 3시간은 연착으로 30분이 되었다. 유럽 여행 동안 아끼고 아꼈던 라운지 바우처는 날아갔다.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해가면서 나는 여행을 떠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의 공항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 오늘이 아닌 다른 날을, 매일이 아닌 특별한 순간을, 언제나와는 다른 장소를 꿈꾸며, 계획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불확실성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연착이 있고, 결항이 있고, 출발 시간은 미뤄지고, 게이트는 바뀌고, 짐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지언정,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간.
그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