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배, 새벽
바다에는 미지의 공간으로 뛰어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른 새벽, 배 안에는 그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들은 어제 한참 다이빙을 하고, 맛있는 저녁과 술, 그리고 바다 이야기에 흠뻑 취해 잠들었다. 술을 마시고 잠을 설쳐도, 다음 날 새벽이면 또 밥을 먹고 장비를 챙기고 다시 바다로 향한다.
어차피 널브러진 다이버들은 물에 잠깐만 담가두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 잠깐 뭍으로 끌려 나온 활어들이 다시 물을 만나 펄떡이며 헤엄치는 것처럼. 어쩌면 그들은 아가미가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물속에 있을 때만 제 호흡으로 숨을 쉬는 존재들.
출근할 때 뇌를 빼두고, 퇴근할 때 다시 장착한다던 회사 동료가 문득 떠오른다.
고래를 찾아 6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선장의 신호에 후다닥 마스크와 핀을 신고 바다로 뛰어들지만, 무작정 헤엄을 치다 보면 또 신호가 울린다. 고래가 떠났으니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다.
고래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건만, 물속에 퐁당퐁당 몸만 담갔다 뺐다 반복하니 다이버들은 모두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다.
6시간의 추위, 멀미, 실망에 고통받다 결국 포기하고 항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래가 다시 나타났다.
마지막 기회였다.
널브러져 있던 다이버들은 "고래가 나왔다"는 말에 다시 날치처럼 바다로 뛰어든다.
검고 어두운 바닷속, 귀를 울리는 소리.
아무것도 없는 듯했지만,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다 아래 거대한 혹등고래가 유영하고 있었다.
어두운 바닷속에서도 더 새까만 눈은 잠시 우리를 스쳐간 듯도 했다. 고요했다.
물속의 세계는 또 다른 세상이다. 수면을 경계로 시야도, 소리도, 감각도, 압박감도 모두 달라진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평소 보지 못한 신비로운 존재들을 살짝, 아주 잠깐 비춰준다.
매일의 항해는 거창한 의미가 아니다. 그저 숨 쉬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일 뿐이다.
고래를 꿈꾸는 사람들은, 결국 그렇게 살아간다.
포기하고, 또다시 뛰어들며. 희망이 아니라, 희망을 향해 뛰어드는 자신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