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일주일은 야간, 다음 주는 주간, 다시 그 다음 주는 야간.
밤과 낮이 끊임없이 뒤바뀌며 이어졌다.
아버지는 평생 교대근무를 했다.
누군가의 아침이 아버지의 밤이었고, 누군가의 밤이 아버지의 생활이었다. 아버지에게 새벽은 휴식으로의 입구이기도, 휴식에서의 출구이기도 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낮 시간 일을 나간 어머니 대신 우리를 돌봤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잠에서 깬 아버지와 라면을 먹었다. 매일 라면을 질리지도 않고 먹었다. 그게 야간 업무를 마치고 온 아버지의 매일이었다.
때때로 아버지는 회사에서 야식으로 나온 빵과 음료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왔다. 대부분은 저렴한 빵, 캔에 담긴 음료수.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남은 음식이 아니라 아버지가 새벽을 건너며 가져온 조각 같은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40여 년 긴 노동의 끝에서 은퇴가 찾아왔다. 마침내 도착한 출구였다.
"이제 좀 쉬어야지."
그 말에는 뿌듯함과 허전함이 함께 실려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밤과 낮을 건널 필요 없이, 햇살에 맞춰 눈을 뜰 수 있었다.
처음 몇 주 동안 아버지는 정말 잘 쉬었다. 늦은 아침까지 자고, 산책하고, 텃밭을 가꾸며 오랜만에 사람다운 낮의 리듬을 살았다. 하지만 편안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쉬는 법을 잊은 몸은 휴식에서 도망치기 위한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남으니 오히려 불안했고, 의무가 사라지니 하루의 의미가 희미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일'이 삶의 중심이었기에, 무언가 해야 할 것 같고, 어딘가로 가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계속되었다. 아무 것도 없이 시간만이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아버지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해외, 계약직, 또다시 교대근무. 낮과 밤을 바꿔가며, 하루의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그 시간대에 또다시 몸을 맡겼다.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다닐 테다."
그 말엔 피로와 안도, 그리고 '살아 있음'이 함께 섞여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런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래도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인 것 같아."
쉬는 게 불안하고, 멈추는 게 두려운 세대. 아버지는 그 세대의 한가운데서 인생을 살아왔다.
그렇게 새벽을 나왔건만, 다시 새벽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 새벽을 바라보며 묻는다.
쉬기 위해 평생을 일해온 사람에게, 쉼이란 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리고 언젠가, 나는 과연 제대로 된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