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이 들어있는 언어에 마음을 모은다.
깻잎 밭에 긴 호스를 끌어다 물을 분사하는 중에 풀을 매던 옆 밭 아낙의 발화가 울타리를 넘어온다. “물 주니까 깻잎 쟤들이 고맙다고 절하네요.”
옆에서 곡괭이질 하던 그녀의 남자 말을 거든다. “낼 아침에 일어나서 봐, 갸들이 벙긋벙긋 웃지.”
마 넝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이 이리로 걸어오며 하는 말에도 초록물이 들어있다. “허허이, 감고 올라가라고 엊저녁에 나뭇가지 꽂아 줬더니 벌써 두 번을 감었네. 눈도 안 달린 것이 차암 !”
긴 여휴라고 민준(아들)이와 예빈(며느리)이 방문했다.
밖에 나가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중에 예빈이 말했다. 직장에서 양가 부모님 디테일하게 건강검진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어머님 아버님도 받아보시자고.
식사를 끝내고 저만치 앞서서 이야기하며 걷는 남편과 예빈의 뒷모습이 보기 좋다.
이만치 떨어져 걸으며 나는 민준에게 말했다.
“장인 장모님께 잘해드려라 최선을 다해서, 그래야 네가 복 받는다.”
텃밭으로 돌아와 예빈이가 만들어온 카프레제를 먹었다. 그녀가 타주는 커피를 마셨다.
쏘스 만들때 민준이가 맛이 이상하다고 자꾸 머리를 갸웃갸웃했다고 예빈이 말했다.
나는 살짝 밍밍할 수 있는 맛을 쏘스가 잡아주네 맛있다 하며 먹었다. 민준이와 예빈 얼굴이 형광 불빛 아래에서 환해졌다.
밤이 깊었다. 예빈과 민준이 가봐야겠다고 일어섰다. 나도 일어났다.
남편은 플래시를 들고 일어섰다.
민준은 옆 밭에 주차해 놓은 차를 가지러 갔다.
예빈이 밭 입구에 있는 완두콩을 내려다봤다. 남편이 플래시로 완두콩을 비춰주었다.
예빈이 말했다. “완두콩이 작년보다는 안 됐네요. 날씨 때문이었나 봐요. 올 사월엔 한국의 사계절이 다 들어있었잖아요. 더웠다가 눈이 내렸다가 비가 왔다가 따뜻했다가.”
남편이 말했다. “곡식은 하늘이 먹게 해 줘야지.”
예빈이 말했다.
저는 아버님 어머님 뵈러 오는 게 힐링이에요.
나는 소리쳤다. “어머나 얘 좀 봐, 우린 ‘媤(시) 자 들어가는 부모야!”
놀란 나의 손이 그녀의 팔을 위부터 아래로 쓸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작은 손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까만 밤이 반짝였다.
그녀가 후훗 웃었다.
민준이가 차를 가지고 좁은 농로를 따라 천천히 오고 있다.
우리 앞에 차를 세운 민준이 내려 조수석으로 옮겨 앉았다. 그녀가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다.
그녀가 말했다.
“아버님 저희 갈게요. 박 작가님, 하짓날 감자 캐러 또 올게요.”
내가 대답했다. “네에.”
남편이 대답했다. “고맙다!”
쉽진 않겠지만 오염 없는 초록물 발화가 내 여생의 목표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