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 필사를 시작했다.
생떽쥐베리의 ‘야간비행’을 읽으며 필사를 시작하다가 그 소설 전체가 필사의 황금어장이어서 가지고 다니던 작은 수첩에 다 넣기는 불가능해 필사를 멈추고 연필로 줄을 그으며 읽었다.
요즘은 글을 쓰며 이 상황의 이 느낌을 어떻게 묘사할까 난감한 경우가 많은데 해답을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 묘사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한다.
어느 작가님이 소개한 시인의 시 중 한 문장이 찬란해 필사한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 깊이 아름다운 작가님들의 글에 감동한다.
자신의 힘듦의 이유를 남에게서 찾지 않고 자책하지 않으며 관조하고, 느린 호흡으로 쉬어가며 따뜻한 삶의 결을 발견하고 성숙함의 계단을 훌쩍 날아오르는 작가님의 글을 눈가가 후끈 뜨거워짐을 느끼며 필사한다.
지금 그곳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문장에 같이 젖는다. 현장감이 그대로 전해져 필사한다.
'몸이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했나 싶어 조금은 서글펐다.’
'저항을 내려놓자 주도권이 돌아왔다.
저항이 힘을 잃은 이유는 단순하다. 싸울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통증으로 몹시 힘든 몸을 자신과 조금 떼어놓고 의인화하며 대단한 필력으로 문장을 선물하는 작가님의 글을 들숨날숨이 겹칠 정도로 숨 가빠하며 필사한다. 비교적 건강한 나는 젊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많이 미안해진다. 그녀의 통증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지난해에 필사해 냉장고에 붙여두고 식탁에 앉아, 보일 때마다 읽었던 글은 보관상자로 옮기고 올해 새로 필사한 글로 바꿔 붙였다.
냉장고 앞을 지나며, 식탁에 앉아 바라보며 그 글들을 읽을 것이다. 작가님들의 심신의 통증에 함께 하며.
'스승'이란 물리적 나이의 개념을 넘어선다.
나와 인연 된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은 나의 스승이다.
모두 평온하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