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by 개울건너

독립해 다른 도시에서 직장생활 중인 서준이가 집에 늦게 도착한단다.

남편과 나는 늦더라도 서준이와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식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저 왔어요. 서준이가 들어왔다.

왔구나.

어서 와라.


서준이는 늘 그렇게 하듯 차려져 있는 식탁을 내려다보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시장기와 함께 집에 오면서 상상했을 어미의 집밥!


씻고 나온 아이에게 말했다.

시장하겠다 어서 먹자.


서준이가 젓가락으로 감자전을 집으며 말했다.

" 낼 바람 쐬러 나갈까?"

내 입이 귀에 걸린다.

국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려던 남편의 얼굴이 환해진다.





누룽지를 끓여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남편이 말했다.

"외숙모 오늘 뭐 하시나? 같이 가시자고 해볼까?"

내가 올케언니(서준 외숙모)에게 전화했다.

그녀는 이제 일어나 뒹굴뒹굴하고 있단다.

바람 쐬러 나가자고 하니 그녀의 목소리가 영롱해진다.

재작년에 오빠가 떠나신 후 그녀는 자주 외로워한다.



소양강가의 바람이 차다.

강을 뒤로하고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언니가 "서준아 이리 와, 우리 셋이 찍자!"

남편이 우리를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언니가 "서준이가 가운데 서라." 했다.

두 여인이 가운데 선 서준이의 양팔을 잡았다.

서준이가 씩 웃었다.


언니가 말했다. "난 이런 바람이 좋아, 차가워서 바람이 아주 매운 느낌 같은.. 그런 거 있잖아."

나는 그 말에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걷다가 그녀가 그 말을 반복했다.

언니는 적당한 표현을 더 찾고 싶어 했다.

내가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얼음이 쨍 소리 나게 쪼개지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상쾌한 그 느낌, 추운 겨울에만 느낄 수 있잖아 지금처럼 "

그녀가 "으응 맞아" 했다.

나의 공감 표현이 적절했는지 그녀는 그 표현의 말을 더 찾지 않았다.


강가 찻집으로 올라갔다.

내려다보니 소양강 풍광은 더 시원해 보였다.

남편이 여기서 보는 강이 더 멋있다며 강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서준이가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렸다가 가지고 왔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언니가 잠시 잠시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자주 말하는 그녀는 우리가 얘기 나누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었다.

무심코 옆을 보다가 그녀의 카메라에 내 눈이 마주칠 때 나는 웃었다. 그녀도 웃었다.

그럴 때마다 갑자기 카메라를 의식해 어색해지는 내 표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김유정역 근처였지 아마?

밭이랑 붙어있었잖아.

그 옆에 주택도 있었는데.


김유정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오빠 살아계실 때 함께 왔던 그 닭갈비집을 기억 따라 걸었다.

길을 건너자 초가집에 토담집 김유정 문학관이 보였다.

아 맞아 여기다 여기! 이쪽으로 가면 돼.

건너서 왼쪽으로 들어갔다.

언니가 "여기에 고추 심어져 있었잖아" 하며 지금은 아무것도 없 황량한 겨울 밭을 가리켰다. 우리는 모두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때 오빠가 고추가 많이 열렸다고 했었는데, 그녀가 덧붙였다.



목소리도 몸집도 큰 남자 사장님이 그대로 있었다.

세월이 꽤 흘렀는데 그는 늙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십 년 전 오빠와 함께 앉았던 그 자리에 우린 다시 앉았다.

그땐 매운 양념갈비만 있었는데 그 사이에 맵지 않은 간장갈비도 준비돼 있었다.

우린 두 가지 다 맛보자며 주문했다.


사장님이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닭갈비를 빠르게 뒤집어주다가 같이 올라있는 떡볶이 떡을 집게로 꾹 누르며 이 떡이 다 익으면 고기도 다 익은 거니까 그때 먹으면 된단다.

뼈 없는 닭갈비를 숯불에 구워 쌈을 싸서 먹는 걸 오빠랑 같이 왔던 그때 처음 알았다고 내가 얘기하며 아련해했다.

남편이 분위기를 돌렸다. 여행지의 음식 맛을 보는 게 여행의 제일 큰 재미라고 말하며.


언니가 우리 2인분 더 시키자고 했다. 식사비는 언니가 내겠단다.

남편이 오늘은 아니라고 했고 나도 오늘은 아니라며 옆에 앉은 언니의 등을 쓸었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 아닌가.

오빠 생전엔 그녀는 오빠와 함께, 오빠 사후인 지금은 그녀의 아들과 함께 여전히 형제들을, 조카와 손주들까지 살피며 돕고 있다. 그녀에게는 그들이 모두 시집 식구가 아닌가.

오늘은 우리가 그녀를 온전히 모셔야 하리.

이번 성탄에도 우리 형제들은 그녀에게서 용돈을 듬뿍 받았다.

서준이가 셀프바를 자주 오가며 비어 가는 접시를 들고 반찬을 날랐다.



어후 우리 무지 먹었다 그지? 언니가 말했다.

내가 어후 진짜 배부르다 대답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남편이 불쑥 말했다. 서준엄마가 나랑 사느라 고생 많았다고.

나는 "어이구 차암 고생은 무슨.. 당신이 나 데리구 사느라 고생 많았지."


언니가 마음 씀씀이 예쁜 예빈이(나의 며느리)가 생각난다고 고기 좋아하는데 같이 못 와서 아쉽단다. 제 자식 칭찬에 무심한 부모 있을까. 예빈이 예쁘다는 말에 남편 입이 귀에 걸린다. 내 입도 귀에 걸린다. 서준이 말했다. 요즘같은 세상에 형수 같은 며느리 없다고.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강가는 춥다고, 여기는 따뜻하다고, 그러네 정말, 강가랑 여긴 기온차가 크다고 우리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서준이가 주차장에 얼른 가서 차를 가지고 올 테니 여기들 계시라 했고 어른들은 아니라고 천천히 운동삼아 걸어서 가자며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책과 인쇄박물관'으로 갔다.

활판 인쇄와 역사, 고서, 근 현대 문학이야기, 체험 교육관 프로그램 안내도 있었다

마스터기 옵셋기 제본기 등도 진열돼 있었다.

그곳을 둘러보며 더 깊이 있는 가치로 내가 일찍 눈을 돌렸더라면, 하는 아쉬움 후회 같은 게 올라왔다.

삶의 현장에서 버리적 대느라 내 영혼은 바스락바스락 오랫동안 말라있었다.


아주 작은 액자에 써서 창가에 진열돼 있는 한 줄 시와 한 문장의 글들이 바로 마음에 들어와 녹았다.

언니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내 옆에서 서서 그 시를, 한 문장을 읽다. 그리고 말했다.

"글은 잘 쓰려고 하면 더 안 써져"

나는 "오호 맞아 맞아!" 격하게 공감했다.

언니에게서 발화된 이 한 마디는 새해 첫날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리라.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준이가 팸플릿등을 챙겨 나에게 주었다.

1층 입구에서 작은 액자를 한 개 샀다. 더 작은 건 없는지 물으니 없단다.

액자에 넣을 사진이 액자보다 작아 여백이 좀 있더라도 그냥 사라고 언니가 거들었다.


며칠 전 앨범을 열어보다가 신혼 때 남편과 서서 찍은 작은 사이즈의 사진을 꺼내 액자를 사면 넣으려고 따로 챙겨 두었었다.

43년 전 그땐 몰랐는데 다시 보니 조금 촌스러운 남편은 선해 보였고 뱃속에 큰애가 막 생겨 입덧 중인데도 나 표정은 야무져 보였다.

나는 그 사진이 더 좋아질 것 같았다.


액자와 서준이가 챙겨준 팸플릿등을 배낭에 넣었다.


우리는 옛 철길을 걸었다.

저녁이 되니 강가가 아닌 그곳에도 차갑다 못해 매운맛이어서 더 상쾌한 바람이 이마를 때렸다.

우리가 걷고 있는 모습을 언니가 뒤에서 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예감한다.

새해엔 글을 잘 쓰려고 애쓰지 않을 것을.

곁에 있는 이들이 치듯 구며 가는 선한 말들을 주워 담아 기록하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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