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울건너 Aug 16. 2023

어머니의 첫사랑

   “엄마, 누가 가장 보고 싶어?” 어머니가 노환으로 자리보존 중일 때 내가 묻자 어머니는 바로 “첫사랑!”이라고 대답하셨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이 어릴 때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에서 우리들에게 당신의 첫사랑인 요셉의 얘기를 가끔 하셨다. 언니와 내가 방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으면 어머니는 화롯가에 앉아 요셉도 공기놀이를 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천주교 교우촌에서 옹기공장을 크게 운영하던 유복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저 아래 지방에서 기근을 피해 올라오던 사람들이 맘씨 좋은 부잣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외갓집을 찾아오면 외조부모님은 그들을 사랑채에 들여 식사대접을 해 보내기도 하고 그 인연으로 어떤 이에게는 옹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옹기 장인이 되게도 하셨다.  

 

  영남에서 흉년이 들어 올라온 젊은 부부가 어느 날 외갓집을 찾아들었다. 외조부는 그들을 사랑채에 데리고 있다가 동네에 집을 얻어줘 살게 하고 남자를 옹기장이로 키우게 됐다. 그 부부가 데리고 온 일곱 살 난 아들이 요셉이었다. 어머니는 요셉을 오빠라 부르며 잘 따랐다. 둘이는 공기놀이를 자주 하며 놀았는데 요셉은 손 등에서 공깃돌이 떨어지지 않도록 손가락을 위로 쭉 뻗치고  올려 손등에 공기를 모아 꺾기를 잘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가끔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어머니 옆집에 살던 ‘사물이’라는 친구였다.

  

 요셉이 십 대 때, 그의 부친이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됐고 얼마 후 그의 어머니도 시름시름 앓더니 외조부에게 요셉의 장래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외조부는 그들을 자신의 산에 묻어줬으며 이 선한 부부의 마지막 부탁을 내치지 않았고 착하며 똑똑한 요셉을 자식처럼 아끼고 배움의 길로 정진하게 했다.


요셉이 더 크자 외할아버지는 그를 대처로 보내 의학공부를 시켰다. 그 사이 사물이는 아랫말 철상이와 좋아 지내다 생긴 뱃속의 아이를 지웠고 그녀의 아버지는 동네 창피하다며 맷돌로 자신의 가슴을 치고 쓰러진 후 앓다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타지에서 공부 중인 요셉과 편지를 나눈다거나 요셉이 방학 때 집에 오면 외조부의 눈을 피해 따로 만나거나 하진 않았지만 서로가 좋아하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외조부도 요셉을 어머니의 배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요셉에게 어머니와의 결혼 의사를 물어 혼인을 결정했다. 그땐 어머니가 자신의 혼인 상대를 결정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외조부는 둘이 결혼하면 요셉에게 병원을 내주리라 마음먹었고 1년 후에 신랑 측에서 보내온 사주단자를 받았다.  

 

  이때 질투 많은 사물이가 등장한다. 그녀는 요셉을 만나 요셉과 어머니가 결혼하면 요안나(어머니 세례명)는 부잣집 딸이라 콧대가 높고 고집이 세서 가난하고 고아였던 요셉을 무시할 거라고, 또 애기 때 화롯불을 만져 기형이 된 어머니의 가운데 손가락을 거론하며 어머니가 예전에 몹쓸 병을 앓아 그리 됐다고도 말하며 둘의 사이를 이간질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동네사람 누군가에게 사물이에게서 들은 말을 얘기하며 고민했고 그 말이 외조부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자 외조부는 대노하며 요셉을 불러다 사주단자 가지고 당장 떠나라며 파혼을 선언했고 그날 밤 요셉은 자신의 부모 산소까지 파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요안나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고 단지 부잣집 딸 데려와 고생시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한 얘기였다는 요셉의 말을 동네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외조부는 많은 날들이 지난 후 “못난 놈, 와서 잘못했다고 빌면 됐을 것을.” 하며 요셉이 그렇게 떠난 것을 맘 아파했다.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 자식들을 낳으셨고, 요셉은 어머니와 결혼하면 외조부가 병원을 내주려고 계획했던 고장인 충주에서 의사로 있고 딸만 여럿 두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다.       

  

 요셉은 자신의 유년부터 시작해 결혼으로까지 잇지 못하고 끝나버린 어머니와의 사랑을 꿈에서라도 나누고 싶었던 걸까. 그는 어머니의 꿈에 가끔 찾아와 어머니가 묵주를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탁자 위의 묵주를 집으려는 어머니 손을 묵주와 함께 잡기도 했다. 어머니가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고해틀에 무릎을 꿇자 신부님이 앉아야 할 자리인 칸막이 저 편에서 요셉이 살며시 손을 내밀었고 어머니가 그 손을 잡으려는 순간 꿈을 깼다. 그날을 끝으로 요셉은 어머니의 꿈속에서조차 영원히 떠나버렸다.    


나는 이루어지지 않은 두 분의 사랑이 안타깝게 생각되다가도 한 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나는 태어나지도 않아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요셉이 아니었을까. 이승에서 그랬듯 어머니는 그곳에서도 아버지에겐 호령만 하시고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요셉과의 사랑을 이루고 있는 건 아닌지.

   그곳에서 지금 그분과 뭐하고 계시냐고 내가 어머니에게 묻는다면 어머니는 공기놀이라고 대답하실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지역 공동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