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교육과 경제 교육의 적정선을 고민하는 아빠
친한 의사 지인이 있습니다. 멀지만 친절하게 진료를 해주는 덕에 가끔 찾아갑니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방문했는데요, 건물 내부에서 통창으로 밖이 훤하게 보입니다.
맑고 화창한 날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심장이 두근대는 그 유명한 압구정 아파트가 보입니다. 아빠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아는 초등학생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참고로 제 아들은 하나에 꽂히면 몰입합니다. 작년에는 야구의 유래와 규칙을 모두 외웠죠)
"아빠 저 아파트 비싸?"
"그럼 아주 비싸?"
"왜 비싸?"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전부 갖추었어"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데?"
"학원(학교), 한강, 대형 공원, 지하철, 상권 같은 거야. 이런 요소를 많이 갖고 있을수록 가격이 비싸"
"압구정 아파트는 몇 개나 갖고 있어?"
"모두 갖고 있지~"
"그러면 엄청 비싸지?"
"당연하지 많이 비싸."
11살 아들이랑 하는 대화치고는 진도가 조금 나갔죠?
저는 유대인식 경제 교육에 관심이 많고 부동산, 주식을 가까이하라고 가르칩니다. 유대인은 어린이가 성년이 되면 친척들이 함께 돈을 모아 주식을 사준다고 하죠. 저도 미국 주식 1주, 국내 주식 1주를 사주었는데, 자녀는 종종 "주식 올랐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큰 아들은 책벌레이고 지적 탐구심이 엄청납니다. 어린이 경제책을 많이 읽었고 아빠가 부동산 글을 쓰면, 힐끔힐끔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녀석은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판다"는 용어도 알고 있는 녀석이죠. "분식집 강아지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농담처럼 아들이 경제관념이 조금 있는 편입니다.
얼마 전 상당히 민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때, 책벌레 경제 꿈나무 아들이 "압구정 아파트 갖기"를 적었죠. 물론 그것 말고 여러 가지를 적었지만, '압구정'이란 단어에 상당히 화끈거렸습니다.
경제 문맹은 반대하지만, 오해를 받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저희 가정을 어떻게 보셨을지 지금도 민망합니다. 부동산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어렸기 때문이죠.
중학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는 돌봄 시설이 있는데요. 맞벌이 부모가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아주 귀한 공간입니다. 그곳을 지나다 우연히 중학생들이 적어 놓은 장래희망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장래희망이 있었지만, "건물주 되겠다"는 장래희망을 적은 청소년이 매우 많았습니다. 어린 중학생들의 눈에도 건물주가 되는 것이 매우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부동산은 중학생들에게도 인기 키워드입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모두 어른들이 사는 세상을 관찰합니다. 물론 경제교육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죠. 돈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초등학생이 압구정 아파트를 갖겠다고 한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 1등이 되겠다"처럼 "대한민국 1등을 갖고 싶다"는 유치한 해석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압구정 사건'은 저에게 약간의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경제교육을 해야 하지만, 자칫 돈이 전부가 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가치를 쫓는 부모가 돼야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것이 자녀들에게 줄 가장 큰 유산 아닐까요?
잠이 들기 전 불을 끄고 아이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이에게 이야기해 줬습니다.
아들아! 돈은 목적이 될 수 없어. 그러면 삶이 외롭고 힘들어져. 물론 돈이 나쁜 것은 아니야. 돈을 벌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면, 하던 일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렴. 돈은 태도가 좋은 사람에게 친구로 다가간단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 자녀에게 줄 가장 큰 유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