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구엘은 태권도 360도 돌려차기에 목덜미를 정통으로 맞고 기절했다
어제 퇴근길에 내가 사는 동네 근처 7.11 편의점에 들러 입냄새 제거용 껌을 사 들고
나오다 미구엘을 만났다. 미구엘은 지금은 고인이 된 뽈로모의 처남,
그러니까 뽈로모 아내의 바로 아래 남동생이다.
뽈로모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주택 공사 현장,
건축물 위로 전기선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재개발 건축 공사 현장,
그 공사 현장에서 감전 사고로 사망했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의하면 전선에 감전된
그의 몸은 사지가 시꺼멓게 타 시체가 형체를 몰라볼 정도로 처참했다고 했다.
내가 12년 전 미구엘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는 막 코밑 솜털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나기 시작한
풋풋한 20대 초반이었다. 흐르는 세월에 장사 없다고, 그도 이제는 얼굴 하관이 온통 구레나룻
수염이 자리를 차지한, 듬직하고 멋진 중년 사내가 되어 있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고 하니, 그는 명함을 주어 보니 건축회사 외장 공사 마크가 찍혀 있고,
그의 이름 옆에 “오션 익스테리어 대표”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건축 외장 분야면,
주로 무슨 일을 하며 직원은 몇 명이나 되냐고 물으니, 사이딩 윈도, 루핑등 외장공사는
거의 다하고 직원은 12명이라고 했다.
사무실 서류 일은 CPA(공인 회계사) 자격이 있는 자기 와이프와 보조 한 명이 한다고 했다.
내가 “ 야, 미구엘! 너 결국 아메리칸드림 실현했구나” 하니, 그는 겸연쩍어하며 앞으로
회사를 더 키우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했다.
“미구엘! 너 올해 나이가 몇이지?”라고 물으니 마흔둘이라고 했다.
우리는 7.11 편의점 밖 처마 밑에 서서 한참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는 내가 매형 뽈로모와 각별하게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 나는지 매형 얘기를 꺼냈다.
누나는 아직도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고 하며, 매형이 감전 사고로 나온 사망 보험금으로
온두라스에서 데려온 매형의 아들딸이 벌써 중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뽈로모 생각에 슬퍼지는 내 얼굴 기색을 눈치챘는지, 그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씩 웃으며 손으로 내 오른쪽 허벅지를 가볍게 툭 치며,
그때 나를 일격필살의 공격으로 기절시켰던 그 무서운 돌려차기는 여전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를 따라 허허 웃으며 “야! 그건 다 옛날얘기지, 이제 나도 나이가 60 다 된 할아버지다.”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조금 더 하다 헤어지며, 그가 언제 시간 잡아 식사 한번 하자고 했다.
그와 헤어져 집에 도착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몸을 뒤로 젖혀, 소파 등받이 위에 목을 기대고 눈을 감으니, 아까 만난 미구엘의 20대 초반의 앳된 모습과
그날 있었던 일이 며칠 전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가 20여 년 전, 내가 미국 온 지 3년이 된 때이니 내 나이 막 서른 중반이고,
나는 건축 외장공사의 한 분야인 외장재 일을 2년 반 해서 중 매캐닉(반 기능공)이었다.
신문에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워싱턴 D.C에 있는 건축 현장에 찾아갔다.
사장은 30대 초반쯤 되는 영어 이름이 브라이언인 한국인 젊은 친구로,
그는 일자리 인터뷰하러 온 나에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일하는 애들이 전부 남미 일군들 이어,
한국 사람이 꼭 한 사람 필요한데, 일하러 오는 사람마다 재들 등살에 하나같이 2주일을 못 견디고 그만둔다고 했다.
자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건축 현장을 비우는데, 그때 그들이 못 놀게 감시도 하고
일도 하는 한국 사람 한 명을 일군으로 두고 싶은데, 그걸 뻔히 알고 쟤들이 한국인을
못 견딜 만큼 심하게 왕따 시키고 괴롭혀 일을 계속 못 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는 한국 사람마다 그 왕따를 못 견디고 단기간에 스스로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남미에서 온 일군들의 리더는 뽈로모라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 유명한 학교 레슬링 대표 선수였고, 온두라스에서 계보 있는 조폭 간부였다고
했다. 내가 본 뽈로모의 첫인상은, 어깨가 딱 벌어진 땅땅한 체구와 부리부리한 눈에서 내뿜는
카리스마가 얼마나 강렬한지 웬만한 사람은 그의 체격과 눈빛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남미 온두라스에서 온 뽈로모 외 12명의 일군들은 뽈로모 말 한마디는 하늘에서 내리는
지상 명령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톤이 높지 않은 저음으로 들릴 듯 말 듯 한 소곤거리는 말처럼
조용했다. 그는 매일 아침, 팀원들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할 일과 주의 사항을 지시하면,
제각각 한 성격 할 것 같은 남미 일군 12명은, 마치 한 몸처럼 하루 종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그날 하루 계획되고 부과된 그들의 작업량을 차질 없이 정확히 끝냈다.
그런 일이 자주 없었지만, 만약 누구 하나가 그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루의 노동에
조금이라도 방해되는 행동을 하면, 뽈로모는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는 평상시 무표정의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일사불란의 팀워크를 깨는 방해자를
사람이 없는 공사장 한쪽 구석으로 불러 조용히 조곤조곤 타일렀다.
그의 질책을 듣는 팀워크 방해자는 그의 말이 다 맞다고 수긍하며 앞으로는 그런 행동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다짐이라도 하듯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사장 브라이언도 뽈로모한테는 함부로 못 하고 매사에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만약 그와 트러블이 생겨 12명, 뽈로모와 합쳐 13명이 일시에 일을 그만두는 사태가 나면,
그의 비즈니스는 당장 실로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며 일을 잘하는 팀을 단시간 내 구하기도 힘들고,
저만큼 팀워크가 좋은 외장 공사팀을 만들려면 트레이닝시키는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들뿐더러,
최소한 2.3년의 세월에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다.
1주일이 지나고 2주가 막 시작했을 때, 그들은 나에 대한 신상 파악이 끝났는지,
그들은 나 오기 전 모든 한국 사람을 쫓아냈던 그 방법으로 “한국인 추방 작전”을 개시했다.
틀림없이 그들의 총 리더 뽈로모가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항상 그의 옆에서 일하며
그의 총괄 비서역을 맡고 있는, 키가 껑충한 까를로스가 내게 슬며시 다가와,
알고도 모르는 척하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응…. 꼬레(한국)” 하고 짧게 했더니, 그는 다음 준비된 말을 바로 내게 전달했다.
“한국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너도 태권도할 줄 아냐”라고 물었다.
만약 내가 할 줄 모른다고 하면, 그는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얘들아! 미스터 찐(그들은 신 발음을 제대로 못 했다)은 한국 사람인데도 태권도도
못 한단다 “라고, 면박을 주면 다른 애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맞장구를 칠 것이다.
“아니, 한국이 태권도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유명한데, 태권도도 못하는 운동엔 젬병이라고” 하며,
다들 나를 비아냥거리고 놀리며 우습게 알고 하찮게 대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건 내 추측이 아니라 인터뷰할 때, 브라이언이 내게 그런 식으로 한국 사람들을
괴롭혀 일을 더 못 하게 쫓아낸다고 말해주었다.
매번 그런 수순으로 한국인들을 알마다 괴롭히면 2주를 못 버티고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나는 벽에 망치질하며 일하는 데 귀찮게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리를 비( little be 그냥 조금)”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뽈로모가 짠 각본대로 내게 전했다.
그럼 잘됐다며 자기들 중에는 뽈로모 처남 미구엘이 태권도를 제일 잘한다며,
오늘 점심시간에 스트릿 파이팅( 길거리 싸움 street fighting)을 하자고 했다.
나는 예상했던 바라, “그럼 그렇게 하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쉽게 대답했다.
어차피 여기서 저들한테 밀리면,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일도 못 하고 쫓겨날 텐데,
나는 싸움에서 맞아 죽사발이 되더라도, 그들 의도대로 쉽게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났다. 차를 타고 10여 분 걸리는 애난데일 웨이크필드
헬스 센터에서 1시간 20분씩 강도 높은 태권도 연습으로 몸을 단련했다.
기구를 사용하는 30분 웨이트 트레이닝이 끝나고 몸이 풀리면,
헬스 센터 내 대형 거울 앞에서 태권도 여러 동작 연습을 50분씩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취득한 태권도 2단 실력이 녹슬지 않기 위해 열성을 다해 노력했다.
나의 태권도 주특기인 현란한 발차기 동작을 하면, 주위 미국인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놀라워했다. 특히 제자리에서 뛰어 다리를 V자로 벌려 공중에서 양손으로 다리를 터치하는
제자리높이뛰기, 즉 서전트 점프를 별로 힘 안 들이고 7.80 센티는 가볍게 뛰었을 정도로
몸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매일 새벽마다 다진 운동으로 온몸이 돌처럼 단단해 누구 다른 사람 살하고 부딪혀도,
크게 아프지 않은 단단하고 강한 몸의 근육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뽈로모가 어느새 소문을 냈는지, 건축 현장 일하는 사람들이 서둘러 점심을 먹고
싸움 구경을 하기 위해 어슬렁거리며 모여들었다. 그 건축 현장의 페인트공, 목수, 설비,
전기팀 합쳐 30여 명이 되는 일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뽈로모가 심판을 본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대강의 태권도 경기 규칙을 적용하여 온몸 다 사용하고 공격하는 풀 콘택트로 하고,
3분 3회전 경기하자고 했다. 만약에 싸움을 하다 몸을 다치면 형사 책임은 물론이고,
서로 간에 치료비 책임을 일체 지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그의 맘대로 정했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뽈로모는 자기 처남 미구엘에게 “ 너 알았지?” 하며 다짐을 받고, 내게도 “미스터 찐도 동의하지”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내가 나중에 딴소리
못 하게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지, “여러분 모두 두 사람 동의 하는 걸 확실히 들었지요” 했다.
자기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결투가 시작됐다.
미구엘은 나를 현장에서 쫓아내려면 직살나게 패주고 싶었을 거고,
나는 이 현장에서 남미 애들 왕따 괴롭힘에 무너져 쪽팔리게 스스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미구엘과 나는 작업복 상의를 벗고 러닝셔츠 차림이 되었다.
작업화는 그대로 신은 상태로 하는 싸움, 둘 다 크게 부상을 당할지도 모르는 싸움이었다.
미구엘은 태권도를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워낙 운동 신경이 좋았다.
발차기하면 176센티미터인 내 키를 훌쩍 넘어갈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미구엘은 힘이 실린 발동작으로 찍어 차기, 후리기, 뒤돌려차기 등 다양한 공격을 시도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가드를 바싹 올려 상체를 막으며 날렵하게 몸을 좌우로 흔들어 가볍게 피했다.
대부분 그의 발차기를 비껴내며 잘 피하고 막았다. 미구엘은 20대 초반이라 체력이 좋았다.
자기 체력을 믿고 시간을 끌며, 3회전까지 끌고 가며 나를 지치게 해 힘을 못 쓰는 상대를,
한방에 때려눕히는 멋진 시합으로 마무리해 구경꾼들에게 자기 실력을 한껏 뽐내고 싶었던 거 같다.
오른쪽 다리를 높이 차올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찍어 누르는,
그의 오른발 찍어 차기를 피하려다 그의 발뒤꿈치로 내 왼쪽 어깨를 한 방 맞았는데
금방 얼얼해 오자, 나도 흥분이 되어가며 더불어 몸이 가벼워지며 전투 열이 타오르고 있었다.
2회전 시작한 지 채 2분이 채 안 되었을 것이다.
미구엘이 또 오른발로 앞 찍어 차기를 하려고 왼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앞에서처럼 피하려고
몸을 빼며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왼발을 미구엘 쪽으로 바싹 한 발 내디디며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약간 낮추었다. 그 반동을 이용한 동작으로 “으엇” 하는 기합과 함께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몸을 뒤로 틀어 돌며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 힘껏 올려 찼다.
내 주특기 “오른발 360도 뒤돌려차기”였다.
오른발 등에 뭔가 크게 부딪히는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으윽하는 소리가 들렸다.
퍽 소리는 내 발등이 미구엘의 오른쪽 목덜미를 강타하는 소리였고, 윽 하는 소리는 발등으로
목덜미 정타로 맞는 순간 저절로 나온 미구엘의 신음소리였다.
76킬로의 몸무게를 싣고 높이 뛰어오르며 몸을 틀어 돌며 하는 360도 뒤돌려차기,
젊은 날 태권도 경기에서 내가 주무기로 사용해 여러 사람을 KO 시켰던 그 발차기,
회전하면서 막강한 힘이 배가되는 360도 뒤돌려차기에 정통으로 맞은 그는 타격의 충격이
상당히 컸을 것이다.
미구엘은 오른쪽 목덜미를 정통으로 맞고 오른손으로 목을 잡고 옆으로 나가떨어지며 기절했다.
10초나 되었을까, 미구엘이 힘들게 일어나 앞으로 비실비실 두어 발짝 떼더니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뽈로모가 급히 미구엘 쪽으로 뛰어가며 나를 보고 손을 내저으며 “스톱! 스톱!”
하고 외쳤다.
뽈로모는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해산! 해산!이라고 소리치며 이제 다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전직 조폭 중간 보스답게 침착했다. 앞으로 고꾸라져 엎어져 있는 자기 처남 미구엘을
똑바로 누이고 허리띠와 작업화를 벗겼다. 비서 까를로스에게 “얼음 박스에서 물병 하나 가져와!”
물병을 가져오자, 병뚜껑을 열고 입에 한 모금 마시더니 미구엘 얼굴에 푸푸 하고 내뱉었다.
뽈로모는 미구엘 뺨 양쪽을 가볍게 치며 “야! 미구엘! 정신 차려 인마! 정신 차리라고!” 하니
미구엘이 눈을 뜨더니 주위를 살피며 “왓 해펀 (어떻게 된 거야)” 했다.
뽈로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인마! 너! 한 방에 K, O 됐어” 하며,
“미구엘! 너는 오늘 오후는 일하지 말고, 저쪽 나무 그늘에서 쉬어라.” 했다.
그다음 날부터 뽈로모는 나를 빅 브러더(큰 형)이라 부르며, 나를 자기 바로 위 보스나 되는 듯,
깍듯하고 정중하게 대했다. 뽈로모가 매사에 정색하고 나를 그렇게 대하니,
나머지 12명의 일군들은 나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공손하게 행동했다.
그런 현장 분위기를 누구보다도 사장 브라이언도 더없이 좋아했다.
“형님이 우리 크루(팀)에 합류하면서 재들이 자기한테도 함부로 하지 않고,
현장 분위기가 차분히 정리되고 있어서 예전과는 완전 딴판이 되었다고 매우 좋아졌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에 그만둔 다른 한국 사람들한테는 재들이 놀리고 우습게 보더니,
형님은 저번 미구엘과 결투 건도 있고 원체 말이 없고 무겁게 행동하니,
재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장 브라이언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러냐,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너에게 고자질하지 않고 그냥 내 맡은 일만 하니,
재들이 전혀 시비 걸 거리가 없어서 아무것도 없어서 그러지!” 했다.
나는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사장 브라이언한테 자기들 잠깐씩 농땡이 치는 걸 보고하듯,
하나하나 다 일러바치지 않고, 한국말로 끄떡하면 밥 먹듯이 욕하며 무시하는 행동 안 하고,
브라이언이 없을 때 자기들이 일을 하든 말든 내 일만 하고 있으니,
그들 또한 나에게 시비 걸 일이 없고 일하기 편했을 것이다.
내 의견은, 그들이나 나나 똑같이 브라이언에게 고용된 일당 일군인데,
저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정보원 역할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브라이언이 없을 때 그들이 잠깐씩 놀든 말든 개의치 않고 묵묵히 내일만 했다.
그리고 사장 브라이언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일절 아무 말도 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맘 편안하게 한 6개월쯤 일하고 있을 때, 나는 영주 스폰서 문제로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그들과 헤어지게 됐다. 뽈로모는 나와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쉽고 서운하다고 남미 애들 전원과
나와 브라이언 팀원 전원을 음식값이 꽤 비싼 레스토랑 후러스 (Hooters) 로 데려가,
푸짐한 닭고기 꼬치구이와 생맥주로 송별식을 해주었다.
송별회가 끝날 즈음 뽈로모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나는 그동안 미국에서 10여 년 건축일 하면서 많은 한국 사람과 일해 봤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무시하며 하인 부리듯 하며, 한국말로 쌍욕 하는 것은 다반사고,
매사 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대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를 학창 시절 배운
레슬링 기술로 메다꽂아버리고 싶은 분노가 일어났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 미스터 찐은 그런 한국인들과는 달랐다,
우리를 전혀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6개월 동안 일하면서 우리에게 욕하는걸
한 번도 못 들었다. 뽈로모는 웬만해서는 짓지 않는 미소를 빙긋이 지으며,
우리 행동을 브라이언에게 낱낱이 보고하는 스파이 행동도 안 하고” 하니
남미 일군들 모두는 손뼉을 치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의 마지막 멘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자기가 행동한 대로 남에게 대접을 받는다,
미스터 찐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행동한다면,
우리에게는 타국인, 이 미국 사회 어디를 가든 좋은 인상을 주고 존경받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한 그의 신사적인 행동에 대해 감사하고,
미스터 찐과 그 가족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