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발리슛 한 골

미국 건축 현장 경기에서 잊을 수 없는 발리슛 한 골

by 감동의 날

미국 와서 4.5년 됐을 때 일이다.

그때 남미 노동자들 10여명을 데리고 건축 외장공사 하는 서른 살 초반쯤 되는

한국인 사장 브라이언 김이 일하는 팀에서 일할 때다.

그때 같이 일하던 스페인이쉬하고 부르는 남미 노동자들은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공을

늘 차에다 싣고 다니며 매일 점심시간에는 일하는 공사 현장에 조그만 공간에서

편을 짜 돈을 걸고 축구경기를 했다.

그때 남미 노동자 일당이 대개 70, 80$ 되는데 한 사람당 60$씩 걸고

땀을 뻘뻘 흘리며 씩씩거리며 경기를 했다.

왜냐면 게임에 지면 그날 일당이 날아가 무임금 허당 날이 되어서다.


그들이 매번 나랑 같이하자고 해도 나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차이 나는

그들과 쉬는 시간에 땀 뻘뻘 흘리며 뛰는 것도 싫고, 또 운동 경기를 돈내기하는 것도 싫어

나는 축구는 전혀 못 한다고 핑계되고 구경만 하는 편이었다.

그들 축구 실력이란 게 기본기가 전혀 안 돼 있어서 흔히 우리가 말하는

논두렁 축구 수준으로 엉성했다.


그날은 잡 현장에 도착한 아침부터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왜냐면 그날 공사현장은 빈 상업용 건물이어서 주차장이 텅텅 비어서

축구경기 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점심시간에 오너 브라이언이 사 온 맥도널드를 조금이라도 더 축구를

오래 하기 위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빨리 경기를 시작하자며 제법 널찍한 주차장 양쪽에 툴벨트를 양쪽에 놓아

간격 1.5 미터쯤의 골대를 만들고는 축구경기를 시작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오전에 일하다가 복통이 심해 미구엘이 집에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네 사람씩 한편이 되어야 하는데 한 명이 부족했다.


브라이언이 오늘만 형님이 좀 뛰어주라고 했지만 나는 축구도 못 하고

내기에 걸 돈도 없다고 거절했다.

자기들끼리 모여 쑥덕거리더니 나에게 큰 형(Big brother)이라 부르며 동생처럼

잘 따르던 뽈로모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미스터 찐" (걔들은 신 발음이 안 됐다)

오늘 한 번만 자기편에서 뛰어주라고 했다.


나는 축구를 너희들만큼 못해 내가 들어가면 네 편이 질 게 뻔하고

내기에 걸 돈도 없다고 하며 한사코 못한다고 거절했다.

돈은 자기가 낼 테니 걱정 말고 미스터 찌는 그냥 골대 옆에

서 있다가 그쪽으로 오는 골은 아무 데나 막 걷어 차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을 끌며 하도 사정하기에 너 지면 나 때문에 졌다고

원망하지 말라고 하니 그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걸어 나오자 브라이언 김이 속한 상대편 세 명은 오늘 게임은 해보나 마나

자기들이 이겼다고 자신하는지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좋아서 어쩔줄 몰랐다.

그때까지도 브라이언 김은 물론 남미 노동자들은 내 축구 실력을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서울에 살 때 응암동 조기축구에서 게임을 뛰는 나를 보고,

그 근처에 선수들 숙소가 있어 가끔 조기 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신탁은행 감독으로 있던 왕년의 국가대표 골키퍼가 나에게 말했다.

"자네는 공격수로는 조금 어렵겠고 수비수로는

서울시 조기축구 대표선수 실력이 되겠다"라고 말한 사실을,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게임은 전반 20분 후반 10분이 지나

이제 경기시간이 10분 남았을 때 예상대로 우리 편이

4대 1 세 골 차로 크게 지고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꽤 넘은 공간을 그들의 하루 일당이 다 되는 돈 60$을 따기 위해

그들 모두는 죽을 둥 살 둥 30분을 씩씩거리며 뛰어다녀 다들 기진맥진해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골대 옆에서만 어슬렁거려서 지칠 일도 없었고

이제 막 몸이 풀려 날듯이 가벼웠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는 느슨했던 작업화 끈을 꽉 잡아맸다.

땀에 젖어 끈적거리던 흰색 반소매 러닝샤츠를 벗어

골대옆으로 휙 집어던지며 "야! 호세! 포지션 체인지! 빨리 들어와! 내가 공격할게!"

하고는 물 찬 제비처럼 힘차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공을 잡고 시간을 끌기 위해 얼쩡거리는 상대편 루이스의 공을 간단히

낚아채 지쳐 빌빌 되는 나머지 둘도 가볍게 제치고 한 골을 넣었다.

그때까지도 상대편은 방심하고 있었다.

많이 이기고 있으니 선심이나 쓰듯 한 골을 내주고

센터로 볼을 툭 차주며 얼마 남지 시간을 끌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센터에서 시작된 볼이 곧 내 발에 걸리자 아까와 똑같이 드리블해

또 한 골을 넣었다. 그제야 상대편은 바빠졌다.

그러나 웃통까지 벗어젖히고 몸이 풀려 이리저리 날렵하게 뛰는

나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축구를 전혀 못 한다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저돌적으로

힘 있게 밀어붙이며 날뛰는 나의 몸놀림에 상대편이 놀라 허둥대는

불과 5.6분 사이에 혼자 세 골을 넣어 순식간에 동점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게임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뽈로모가 상대편 오른쪽 옆줄 따라

볼을 몰고 가다가 상대 골문으로 달리는 나에게 볼을 띄워 올렸다.

가슴으로 트래핑해서 볼의 속도를 죽여 살짝 위로 올렸다가

숨이 죽어 땅에 떨어지는 볼을 몸을 왼쪽으로 기울이며

오른발로 있는 힘을 다해 발리슛을 때렸다.


볼은 골문 앞에 서 있는 브라이언 몸을 맞고 튕겨서 골대 역할을 하는

툴벨트 안쪽을 맞고 굴절되어 골문으로 떼굴떼굴 흘러 들어갔다.

뽈로모와 호세는 환호성을 지르며 나 있는 데로 달려왔다.

뽈로모는 나를 부둥켜안고 내 이마에 뽀뽀까지 해대며 야단을 쳤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미스터 찌니의 축구 실력 때문에 포기했던

일당과 게임을 이겨서 덤으로 하루 일당을 더 챙기게 됐으니 그렇게 기뻐할 만도 했다.


상대편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지금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은 듯

멍하니 넋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오후 일을 시작하며 사장 브라이언이

"아니, 형님, 축구를 왜 그리 잘해, 우리 축구하고는 수준이 달라요.

형님! 축구 선수 했지요" 하는 말에

나는 "선수는 무슨 선수냐, 어렸을 때 좀 차 봐서 그렇지"하고 말았다.

일이 끝나고 음료수를 마시려 7.11에 들렀을 때 뽈로모가 한사코 안 받는다고 해도

그냥 받으라며 기어코 내 주머니에 찔러 넣어준 돈 60$을 꺼냈다.


남미 노동자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선인장 원료로 만든다는

한 박스에 12병이 들어있고 값이 24$하는 코로나 맥주 두 박스를 사

저녁에 숙소로 가서 나눠 먹으라고 뽈로모 손에 들려줬다.

그것을 본 뽈로모 차 안에 있던 나이 어린 막내 알렉스가

"헤이! 미스터 찐! 유어 굳 사카 플레이!

꼬레아 마라도나! 무차스 그라시아스 비루" (야! 미스터 신! 너는 축구 선수야, 한국의 마라도나!

고마워 맥주)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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