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카가 파리로 간다네요

by 감동의 날

백악관 경호팀에서 근무하는 비안카(Bianca)가 프랑스 파리로 발령 나서 다음 달에 떠난다고 합니다. 그것도 승진을 해서 파리를 포함 유럽지역 경호실 소속 오피스 5개와 팀원 18명을 관리하는 팀장 즉 유럽지역 미 백악관 경호 기획실 총괄 매니저가 되었답니다.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비안카는 내가 근무하는 마사지 크리닉 내 단골손님이 된 지 년 됐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이민 왔는데도 한자 고사성어도 많이 알 만큼 한국말을 잘했습니다. 나하고는 대화가 잘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마사지받으러 오면 서로가 한 달 내 있었던 일을 평소에 못한 한국말로 원이나 풀듯 말하기에 바빴습니다. 미국에서는 드문 불교신자고 독서를 많이 해 아는 것이 많아 대화가 잘 통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사생활의 고민이며 가벼운 농담까지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친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5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개성에서 1.4 후퇴 때 내려와 인삼 장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한학을 하신 할아버지 밑에서 7살 때 천자문을 다 떼었다니 머리가 영특한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 유학 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5주에 걸친 백악관 경호실 면접시험을 통과하고 자기 인생에 전혀 계획에 없던 미 백악관 공무원이 되었답니다. 킥복싱을 오래 해서 그런지 키는 별로 크지는 않지만 탄탄하고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로 30대까지 100미터를 13초에 달렸다 하니 몸이 비호처럼 빨라서 지금도 웬만한 남자 몇 명쯤은 단번에 때려눕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몸으로 대통령을 철통같이 보호하는 경호원인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호실 예산 경비를 기획하고 운용하는 파트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부족할 것 없이 모든 게 행복할 것만 같은 비안카는 알고 보니 아픔이 많았습니다.

이혼한 지 5년쯤 되고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돌싱녀였습니다. 우여곡절 많게 살아온 비안카는 기다렸듯이 내게 그동안 이혼과정에서 고생한 얘기를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아픈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성을 다해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어제 내가 파리로 같이 갈 남자는 구했냐니까 픽 웃으며 이제 세상 남자들 다 질렸다고 했습니다. 비안카 표현에 의하면 식사할 때 먹기 좋게 옆에서 생선 가시까지 발라줬던 그놈(전 남편),

자기를 배신하고 바람을 핀 그놈하고 애들 양육권을 차지하기 위해 이혼 소송을 4년을 끌며 얼마나 애가 탔던지 세상 남자들이 싫어졌다고 했습니다. 내가 세상 싱글들 다 눈감고 사는가 보다며,

비안카 씨처럼 매력 있는 여자를 왜 여태 못 잡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그녀는 약간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며 얼굴에 홍조를 띠었습니다. 아마도 평소 직장에서 부하직원들을 엄하게 대했더니

직장동료 남자들도 자기가 별로 매력 있는 여자로 보는 것 같지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 끝에 내가 "아! 내가 25년만 젊었어도 이번에 비안카 씨 따라 파리로 가는 건데" 했더니 엎드려서 등 마사지를 받던 비안카는 큭큭거리며 한참을 웃더니 왜 하필 25년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는 총각이라

자유로와서요"했더니 그녀는 "아, 신 선생님! 오늘도 되게 웃기시네" 지금이라도 신 선생님만

괜찮다면 나도 한번 고민해 볼 테니 잘 생각해 보세요" 하고 또. 큭, 큭 웃었습니다.

내가 "50 넘은 이 중 늙은이를 어디다 쓸라고요" 했더니 "늙기는요 지금부터 진짜 인생맛을 알

나이인데 파리에 가서 나랑 같이 유럽 곳곳 구경도 다니고 신 선생님 글 잘으니 보고 느낀 점

글로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도 하면 살 맛 날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나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요" 했더니 우리는 외국으로 파견 나가면

부양가족비용이 추가되어 페이가 나오니 전혀 걱정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나로서는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인생 로망이 비로소 이뤄지는 절호의

찬스인데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될 것 같네요. 했더니 비안카는"와이프 무서워서 그러죠." 했다. 나는 "예, 맞아요. 와이프가 1년 365일에서 며칠만 빠지는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는 이른바 새벽기도 용사입니다. 비안카 씨 따라 야반도주하면 다음날 새벽기도에 나가 "하느님! 결혼해서 지금까지

지지리도 고생만 시킨 남편이라는 인간이 조강지처 버리고 자기 혼자만 남은 인생 실컷 재미 보며 살겠다고 젊은 여자 따라 프랑스로 도망간 이 쳐 죽일 인간을 하나님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세요" 하면 하나님은 새벽마다 문안 인사 오는 딸의 기도를 즉시 수용하셔 매우 진노하실 겁니다.

다메섹 길가에서 사도바울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대낮에 광선을 쏘아 눈멀게 하고 다리에 힘 빼놓아 앉은뱅이 만들어 놓으면 이 좋은 마사지도 못하고, 그동안 고생고생하다 이제 좀 자리 잡고

살만한데, 내 신세가 단박에 곤두박질쳐 바로 패가망신할 것 같아서요. 했더니 비안카는 한참을 또 큭큭 거리더니 “오늘 너무 웃어서 배꼽 안 빠지나 모르겠네요” 하며 "그러게요, 신 선생님! 그런

헛생각 말고 지금처럼 성실하게 잘 사세요". 했다. 나는 마사지가 끝나고 비안카를 출입문까지 배웅하며 "3년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로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룸으로 들어온 나는 능력 있고 조건 좋은 비얀카를 놓친 것이 못 내 아쉬운 듯 위자에 앉아 무릎을 탁탁 치며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허... 이 몸이 25년만 젊었어도… 비안카 따라 파리 가서 실컷 유럽구경도 하고 … 구경한 것 맛깔난 글로 사방에 떠벌리며… 신나는 인생 한번 살아보는 건데… 아깝다 아까워…

가버린 내 청춘... 내 젊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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