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효: 소소하지만 확실한 효도 03
전설적인 다이어트 방법들이 있다. 유산소는 유튜버 땅끄부부, 하체는 박봄 다리운동, 식단은 간헐적 단식. 이외에 각종 홈트나 식단을 찔러보긴 했지만 가장 유명한 것들로 꼽아보자면 위와 같다. 시도해 본 결과 가장 해볼 만한 것은 간헐적 단식이었다(성공했다는 말은 아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포기하지 않고 금식 시간만 맞춰주면 된다. 포인트는 시간 간격이다.
소확효에도 ‘간헐적’을 적용할 수 있다.
가장 주기가 빠르게 돌아오는 건 OTT 시청이다. 조선시대에 철도가 깔리며 혁신이 시작된 것처럼, 내가 들여온 OTT는 우리 집 풍경을 바꿔놨다. 취미 없는 고장군의 즐거움이 되고,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혼자 보는 것보다 다 같이 수다 떨며 보는 재미가 은근히 크다.
요즘 부모님과 시청하는 콘텐츠는 총 세 가지다. 수요일에는 드라마 <조립식 가족>. 제목에서 티 나듯 가족과 관련된 감동 코드가 등장한다. 애연가 아빠가 중간중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보는 이유다. 2회 연속 방송이라 저녁 먹으며 한 편, 디저트 먹으며 한 편을 보면 딱이다. 목요일엔 예능 <끝사랑>을 시청한다. 50대 이상의 싱글 시니어들이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 50대 커플이 사는 우리 집에서는 <환승연애>보다 핫하다. 주말의 마무리는 드라마 <정년이>다. 티빙으로 국극과 판소리를 즐기며 소소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 전개가 잔잔할 때쯤 내가 목포 사투리를 한 두 마디 던지면 엄마의 웃음이 까르르 터진다.
누이 좋고 매부 좋듯, 나도 좋고 부모님도 좋은 것을 소확효로 분리하는 이유가 있다. 주기적으로 보는 콘텐츠가 정해지기까지, 나는 알고리즘이 된다. 신작을 분석하고, 엄마 아빠의 취향에 맞춰본다. 요즘 재밌는 프로 없냐는 말에 유튜브 알고리즘보다 빠르게 추천작을 내보인다.
스포츠 중계만큼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내 몫이다. 엄마가 대사를 놓치거나 전개를 이해하지 못하면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첫 번째 간헐적 소확효다.
대략 2주에 한 번쯤 시간 간격을 두고 실천하는 소확효도 있다. 늘 서서 근무하는 고장군의 뭉친 어깨, 부은 다리, 뻣뻣해진 허리를 풀어주는 일이다. 장군의 딸답게 상당한 악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구석구석 안마를 하고 나면,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는 몸이 가뿐하다고 한다. 비전문가의 어리숙한 마사지에 돌아오는 리뷰가 항상 후하다. 태국 여행에서 진정한 타이 마사지를 받아본 바 있는 나는 내 서비스가 얼마나 약한지 안다. 그 사실을 엄마도 알 수 있도록 태국에 꼭 한 번 데려가고 싶다. 또한 마사지 정기권을 끊어주는 대확효를 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가장 시간 간격이 긴 간헐적 소확효는 새치 염색이다.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간격을 두고 제공하는 서비스다. 염색 한 번 해본 적 없는 아빠와 달리 엄마의 새치는 무럭무럭 자란다. 세련된 레드 브라운 컬러를 꽤 오래 유지하고 있는데, 그놈의 흰머리들이 미관을 해친다. 그렇다고 미용실을 자주 방문하기는 은근히 부담된단다. 그래서 딸내미 살롱이 열린다. 고객님의 니즈를 빠짐없이 반영하고, 빠른 AS도 가능해 만족도가 크다. 무엇보다 효도 페이로 결제 가능하니 계속 찾을 수밖에 없다. 어렵지 않으니 셀프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가끔 투덜거리면, 딸이 있는데 왜 혼자 하냐고 받아쳐 할 말이 없다.
얼마 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는 소확효. 작은 순간을 모으면 커다란 유대감이 된다.
찾아보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알맞은, 우리 부모님께 필요한 간헐적 효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