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것이 있다.
치과에 다녀오면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하고, 감추려 했던 무엇인가가 드러나기 때문일까. 갈 때는 잊고 있었던 예약날짜를 알려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있었고, 1년에 한 번 하는 스케일링을 하는 정도로 여겨서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막상 검진하고 보니, 더 나빠지기 전에 처치해야 할 곳들을 조목조목 듣게 되었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기야 불안한 전조는 있었다. 얼마 전에 갑자기 치통이 있었다. 보철치료를 하였던 부위여서 불안하였지만, 열심히 양치질하였더니 증세가 없어져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부위의 X-ray 사진을 찍고, 1년 전과 자세히 비교하더니 잇몸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꼭 필요하지만, 누구나 선 듯 가기를 꺼리는 곳이라는 ‘치과’를 앞으로 세 번이나 더 가야만 한다.
인류에게 감기보다도 흔한 질병이 충치라고 한다. 나도 충치가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까지는 무시하고 지냈다. 그러다 신체검사의 항목에 있어서 미리 치료해야 했고, 그 후 40여 년간 친해지고 싶지 않은 치과에 다니고 있다.
금전적인 부담도 있어서 보험을 들었다가 지금은 해약하고, 부부가 치과 치료만을 위한 적금을 따로 들고 있다.
오복의 하나인 ‘수명 복’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필수조건 중의 하나가 건강한 치아라고 한다. 건강한 노인들을 보면 모두 치아 상태가 좋아 보인다.
할아버지께서도 90세가 넘어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치과는 전혀 모르고 소금으로 매번 양치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치아는 건강하셨다고 한다.
이럴 때는 슬그머니 치아가 안 좋으신 어머니를 걱정스레 돌아보게 된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병고로써 양약을 삼아라.’라는 성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고 하셨다.
머리로 이해는 가지만, 병고가 내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래서 각종 방송의 건강 관련한 프로그램이 가끔 건강 염려증을 생기게 하고, 광고를 위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눈을 머무르게 한다.
그래도 치과에 다녀온 덕분에 나의 육체적 건강 현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병은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치과 질환을 병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시력의 저하와 함께 노년으로 접어드는 몸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가장 가까운 건강지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곳이 건강한데 치아만 나빠질 수 있겠는가.
내 몸의 상태를 바로 알고, 과신하지도 말고 너무 주눅 들지도 말아야겠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막연히 건강하려니 여기고, 젊은 시절의 안 좋은 습관들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오늘 아침에도 마침 건강 프로그램에서 어느 약사가 식후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하여 탄수화물을 줄이라고 권고하였는데, 현실적으로 공감하면서 보게 되었다.
감추려 해도 감추어질 수 없는 것이 있고, 감추는 것이 오히려 화를 키우는 것도 있다. 건강에 대한 부분만이 아니다. 스스로 찾도록 노력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맞추어 살아가는 삶도 지혜로운 삶이다.
알고 인정하면 두려움과 불안감이 줄어들고 대비하기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