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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귀퉁이 나들이

역사 깊은 서울에는 소소하게 다닐 곳이 많다.

by 여문 글지기

아내는 자신을 위하는 일에 대해서는 좀처럼 주장을 펴지 않는다. 아니, 않았었다. 남편이나 아들들 옷을 고를 때는 조건이 까다로웠지만 정작 본인 옷에 대해서는 크게 표시하지 않았다.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외식이라도 할 때는 늘 남편이나 아들들 입맛을 먼저 고려할 뿐 본인의 기호를 말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음식부터 주장하는 바가 분명해졌다. 아무리 먹고 싶은 음식이 있더라도 식당이 정리되지 않았거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일단 불합격이다. 두고두고 그런 곳을 고른 눈썰미를 탓하고, 다시는 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나는 묵은 맛이 나고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 정겨운 한 끼 식사가 좋아지는데, 일치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내가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아내는 여행도 다니자고 한다. 맛집 기행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자주 보더니 가보자고 하는 곳이 두 손으로 세기도 어렵다. 나는 여행 중에 그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동의하지만 맛집을 찾고 경험하기 위한 여행에는 반대다.

여행을 위해 집을 잘 나서지 않는 나의 게으름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다.

연휴가 시작되는 날, 아내의 여행과 맛집 기행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핑계로, 동네 부근의 ‘핫 플레이스’인 부암동으로 탐방에 나섰다. 맛집만으로는 부족하여 윤동주 문학관을 첫 번째 방문지로 삼았다. 여행 기분 내느라고 시내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갔다. ‘동주’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가까이 두고도 가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던 차에 좋은 기회라 여겼다.

옛 상수도 가압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문학관은 작고 머문 시간도 짧았지만, 마음을 채우고 여운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젊어서 요절한 시인의 생애와 몇 안 되는 유물 원고, 고향마을에서 옮겨온 우물 유구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해설사님의 친절한 안내도 좋았고, 2 전시실에서 쳐다보는 직사각형의 하늘도 좋았다.

창의문 밖의 도로 시설물은 우리의 문화재를 보는 현실이어서 매우 안타까웠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편의를 위한 행정의 산물이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음식점의 음식은 나들이의 주된 목적이기도 했지만, 우리 부부의 입맛과 정서에는 약간 부족했다. 왜 유명한지, 기다리는 줄까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찾거나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음식점의 부족함은 석파정에서 넘치도록 채웠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부터 천경자, 김기창 작가 등의 현대 작품을 직접 보는 호사를 누렸다.

어린 딸과 소곤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모녀의 관람 태도도 좋았다.

어느 일본 사진작가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어서, 요즘 사진 배우기에 열심인 아내의 만족도를 높여 주었다.

석파정, 조선의 끝머리에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650년이 넘은 소나무의 위용부터 대단했다. 고궁 등에 비해서는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선인들의 삶의 한 자락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20250606_131245.jpg 석파정 소나무의 용머리, 몇 군데 인지도 모를 연리지가 650년의 세월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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