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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의 자기만족에 대하여

만족이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고 안주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by 여문 글지기

지난달에 부모님을 뵙고 오면서 가져온 책을 읽고 있다.

1980년대에 발간된 책, 아직도 그 책을 읽고 받은 신선한 충격은 기억하는데 내용은 거의 새롭다. 지금 알고 있는 지식 일부는 이 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겠다. 반가운 구절들이 많고,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책은 읽을 때마다 숨겨둔 보물을 내주는 화수분이 맞나 보다.

책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배경은 기원전 400년에서 600년이지만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서 읽기는 편하다. 표준어가 바뀐 것도 알게 된다.

그 책에는 ‘~읍니다.’ 형태의 대화체로 되어있다. 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끼지만, 그래도 거슬리지 않고, 읽기에 불편이 없는 것이 신기한 부분도 있다.

손자병법은 손무가 지었다고도 하고, 그 자손인 손빈이 지었다고도 한다. 이 책에는 그 손빈과 학문의 벗이자 나중에 원수가 되어 혈전을 벌이게 되는 방연과의 이야기가 나온다.

방연이 손빈에게 힘들여 이룩한 지식을 헛되이 하지 말고, 함께 출사 할 것을 권한다. 손빈은 아직 청년이었음에도, 작게 만족하며 살겠노라며 친구의 권고를 거절한다.

방연은 쇠락하는 집안 환경에서 자라나 주위에서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고, 자기의 재능이 발휘되지 못함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이야기의 전개로 보면, 방연의 권고는 순수하지 못했고 손빈의 배경이 필요하여 함께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내다본 손빈이 현재의 출사는 거절하였지만 다양한 공부와 세상일(事)에 관한 관심까지 접지는 않았다.

조급한 마음은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자조하며 현실에 만족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기회는 만들 수 있다. 결국 병법 외길만 걸으면서도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얕고 병법의 임기응변과 다양한 적용에 이르는 경지까지 이르지 못한 방연은 손빈에게 패한다.

결과를 알고 보면서도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점이 많다. 나는 아직 눈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어제의 인생 강의에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할 일을 못 찾는 은퇴자에게 하루는 무척 길고 무료하다. 그러나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자기 계발에 대한 일과를 지켜가는 사람들에게 일상은 바쁘다.

봉사활동을 하는 분의 사례가 공감이 간다. 봉사활동 초기에는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불과 몇 주 사이에 삶의 활기가 살아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강사님은 고립에서 벗어나 주변에서 함께 할 활동을 찾으라고 하였다.

책 읽기와 글쓰기 등의 취미를 꾸준히 하고, 작은 움직임일지언정 집안보다는 밖에서 활동할 것을 권했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몇 가지가 거론되어서 귀가 솔깃해졌다. 여유를 가지고 멀리 보면서도 일상을 더욱 단단하게 다질 이유를 하나 더 발견했다.

이제는 세상의 높은 곳을 향하는 뜻은 접고, 현실에 만족함을 느껴야 할 때다.

도전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허송세월하는 노년을 원함이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새로운 목표는 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기꺼이 그 도전의 길을 가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삶의 만족 속에서도 충분히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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