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1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투자한다면 1만 시간이 약간 넘게 된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면 10,950시간)
1만 시간의 법칙은 흔히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한 노력의 시간을 정량화하여 제시하였는데, 모두 혹은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이 정도 노력하지 않는 선수는 없을 텐데, 정상에 서 보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다.
K-Pop의 유행에 따라 인기 정상의 그룹이 되고자 연습생 시설부터 노력한 시간을 합하면 1만 시간은 쉽게 넘길 것이다. 그들도 모두 정상에 서지는 못하고 심지어 정식으로 무대에 서 보기조차 못하기도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이 맞으려면 전문가의 기준을 우승이나 성적보다 기술, 기량의 완숙이라는 의미로 넓게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밑 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가득 채울 수 없다. 헛된 노력을 이르는 속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웠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노력하였는가와 성실하게 일했는지는 따질 필요조차도 없다. 이미 결과는 실패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맡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모두 쓸데없는 노력은 아니다. 콩나물은 밑바닥이 뚫려 있는 시루에서 키운다. 바닥이 막힌 독에서 콩을 키운다면, 물속에서 싹이 나기도 전에 썩고 말 것이다. 시루처럼 밑바닥이 뚫려 있고, 주기적으로 물을 부어주면 콩은 어느새 자라서 먹기 좋은 콩나물이 된다.
물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기에, 이 경우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훌륭하게 제 몫을 한 것이다.
예전에 어느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분이 수강했던 과목 중에 전혀 부담이 없는 과목이 있었다고 한다. 수업 진행도 느슨했고, 수업 준비나 과제에 대한 부담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토론 위주의 진행은 어떤 면에서 보면 ’시간 때우기식‘이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반전은 학기 말에 있었다고 한다.
느슨한 수업인 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에 물 붓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부담 없었던 토론 시간이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학생들 모두 세계의 정세를 보는 시야가 넓어져 있었고, 문제의 정수를 찾아내는 수준이 높아져 있음을 자타가 인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와 어울리는 멋진 구절을 최근에 읽은 책에서 발견하였다. 책을 읽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는데 그래도 독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가 막힌 명답이다.
“읽기는 쌓이는 것이다. 그러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는 자신을 걱정해야 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고, 1만 시간의 법칙을 막연하게 보고 미리 포기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밑 빠진 시루의 물은 그냥 흘러버리는 듯 보여도 콩나물을 길러낸다. 단, 길을 가기 전에 방향을 잘 정하고 중간 점검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