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를 통하여 작은 성장을 이어간다.
수업 중에 옆에 앉으신 분이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캘리그라피를 왜 배우시나요?”
“인공지능 시대라고 너무 디지털만 강조하는 것 같아 아날로그 취미를 한 가지 가지려고요.” 대답하고 나서 배우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분의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고, 그냥 글자 획 연습에 다시 몰두했고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손을 놓았던 캘리그라피를 왜 다시 시작하는가? 사실은 지금의 일과가 너무 단조로워서 무엇인가 변화를 찾던 중에 발견한 것이 캘리그라피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집 근처의 50플러스 센터에서 새로 개설하는 강의를 검색하던 중에 야간에 진행하는 수업을 발견하였다.
온라인 강의로만 배웠던 것을 대면 수업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업무에 미숙한 시기에는 다른 방향에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는 일과에 적응하고 나니 시간 여유가 생긴다. 필체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관심이 있어서 이면지에 낙서도 하고, 독서 중에 발견한 좋은 말을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한다. 그런 중에 캘리그라피 수업을 발견하여서 바로 수강을 신청하였다.
수업은 3주간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진행된다. 강사님은 오래 글씨를 써 오셨고, 그만큼 수상과 전시 경력도 많으시며, 강의도 계속해 오신 분이다. 다정한 미소와 조목조목 알려주시는 열정 넘치는 모습이 좋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 자판의 타자에 익숙해져서 붓펜 잡는 것부터 서투르고, 생각처럼 곧게 그어지지 않는 선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강의 진도가 나에게는 너무 빠르다. 인서구노(人書俱老)라고 했으니 절대 서두를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주 작품 한 가지씩을 만들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걷지도 못하면서 뛰기를 강요하는 듯하여 살짝 불편하기도 하다. 나의 목표는 기초만이라도 좀 더 단단하게 하고 싶은 소박한 것이었는데, 수업은 기대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옆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수업 진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 수강생들이 있어서 같이 격려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세 시간의 수업은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무딘 손끝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글씨가 제법 모양을 갖춰간다. 내놓기 위한 작품은 아니지만, 하루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에 뿌듯해지기도 한다. 이것도 조그만 성장이겠지.
양평의 용문사 앞에는 수령이 1,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여러모로 경이로운 나무이다. 신라시대에 심은 나무가 지금까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내가 가장 놀란 사실은 지금도 은행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이다. 그 오래된 나무가 지금도 성장을 하고, 천년이 넘도록 생산을 이어오고 있다. 아무리 식물이라고 하지만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재작년 진해의 벚꽃 구경에서 보았던 벚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속이 비어 있는 고목에서 봄을 맞아 피운 꽃의 아름다움은 젊은 나무와 다를 바 없었다.
사람인들 왜 나이 들었다고 성장하지 못하랴. 너무 크고 원대한 포부는 내려놓더라도, 오늘에 안주하지 말고 작은 성장을 위해 주위를 좀 더 세심하게 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