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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독서의 깊이

결과의 허상에 머물러 과정의 실패를 잊지 말자

by 여문 글지기

책은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종이 위의 글자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읽는 나의 눈과 마음은 세월에 따라 달라진다. 젊은 날에는 영웅의 승리와 찬란한 결과가 눈 부신 빛으로 다가왔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빛은 서서히 옅어지고, 대신 그림자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고뇌와 실패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독서란 결국 글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가치관과 경험이 나이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는 아직 실패의 무게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미래는 무한히 열려 있고, 성공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책 속의 영웅은 곧 나의 꿈이 되고, 그들의 승리는 나의 희망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선택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때로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따라오지 않음을 깨닫고, 때로는 실패가 오히려 더 큰 배움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독서는 단순한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삼국지와 같은 고전을 다시 펼쳐 본다. 젊은 날에는 제갈량의 지략과 영웅들의 승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나라의 흥망성쇠가 덧없음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영웅의 빛나는 순간보다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무거운 과정이 더 크게 보이고, 결국 모든 것이 흘러가 버린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살며시 가슴을 울린다.

삼국지를 읽었던 경험을 세월에 따라 나누어 돌아본다. 학생 때와 직장 초년생 시절에는 제갈량의 천재적 전략과 유비·관우·장비의 의리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들의 승리와 영웅적 활약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라는 열망을 품었었다.


중년이 되면서 유비의 고뇌, 조조의 냉철함, 제갈량의 헌신이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현실적 선택의 무게로 다가온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책임과 배신을 경험하며, 책 속 인물들의 갈등이 나의 삶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영웅들의 죽음과 나라의 흥망성쇠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으로 보인다. 제갈량이 출사표에서 보여주는 불굴의 노력조차 결국 실패로 끝나는 장면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며 가을밤의 독서를 성찰의 시간으로 이끈다.

이처럼 같은 책이라도 나이에 따라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진다. 젊은 시절에는 성공의 결과를 좇고, 나이가 들수록 실패와 과정에서 교훈을 얻는다.

결국 독서의 깊이는 독자의 나이와 경험에 따라 달라짐을 체감한다. 젊은 시절에 결과의 화려함에만 머물지 말고 과정 속의 실패와 시행착오에서 배우려고 노력하였던가.

실패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더 깊은 성찰과 성장의 기회인데, 삼국지를 다시 보며 이제야 영웅들의 성공뿐 아니라 그들의 좌절과 한계에서 삶의 진실 한 조각을 발견하곤 한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행위가 아니다. 독서는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며, 세월이 흐를수록 그 거울은 더 깊은 그림자를 드러낸다. 젊은 날에는 결과의 빛이 허상이었음을 알았고, 과정과 실패의 의미를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야말로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지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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