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아들들과 관계를 생각해 보다.
넷플릭스와 같은 세계적인 전문 영화 채널까지 우리나라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서양의 문화와 생활상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다. 단지 낯설지 않음을 지나서 내용면에서 그쪽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서구화라는 말이 이제는 어울리지 않다. 글로벌 시대에 어느 지역에 한정된 생활 형태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 세대에서 명시적인 국경선의 의미가 더 이상의 장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보이지 않는 문화의 흐름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조선시대의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모두 찬성하지는 않는다.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무리에서 암컷은 성장하여도 계속 무리에 남지만, 수컷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무리를 떠나게 된다. 무리의 우두머리 수사자는 한 마리만 있어야 하는 것이 사자무리들의 불문율인 것 같다. 무리를 떠난 젊은 수사자들은 독립생활을 하다가 도태되기도 하고, 다른 무리의 수사자에게 도전하여 물리치고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서양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사자의 습성이 인간에게도 존재하는 자연적인 흐름 때문인지 오늘날에 젊은 세대들은 결혼과 상관없이 일정 시기가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한다. 특히 MZ세대에게 젊은 1인 가구는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큰아들이 아직도 같이 살고 있고, 서로 불편한 면이 없지는 않다.
나는 유교의 기준을 적용한 대를 잇는 책임에서 상당히 자유롭다. 아버지가 장남이 아니신데, 위로 형님이 계시고, 조카도 있어서 장자에게 부과되는 의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가족계획에서 아들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슬하에 아들만 둘이다. 어떤 종가에서 아들을 몹시도 바라는데도 낳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 세상은 참 공평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맞기도 하다.
더구나 나는 군에서 장기 근속한 혜택으로 사후에는 국립묘지에 갈 수 있다. 나중에 국립묘지에 관한 법률이 어떻게 개정될지 모르지만, 자식들에게 부과되는 장례 의무도 상당히 경감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기대고 바라는 것보다 각자 독립해서 나름대로의 건강한 가정을 이끌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아들은 장가가면 가까운 친척이라는 말이 있다. 21세기를 맞은 시대의 변화상 중의 하나가 모계사회로 회귀라고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도 친사촌이나 고정 사촌들 보다는 외사촌이나 이종사촌이 더 가깝다고 한다. 우리 집안은 워낙 멀리들 살고 있어서 교류가 적으니, 더하고 덜함의 차이가 없기는 하다. 친척에 대한 개념도 이제는 많이 희석된 듯하다. 아들이 결혼하면 친가보다 처가에 더 가까운 듯하면 어떤 기분이 들려나?
아들들이 가정을 이루었다고 하여 벽을 만들고 멀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독립된 가정으로 인정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다. 물론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물리치기 어렵겠지만 내가 정한 테두리 안에 가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아내와도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이고, 다행스럽게도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아들들도 부모가 곤란함을 겪을 때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농업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는 노인들에게 은퇴라는 말은 없었다. 나이가 많아져 육체적인 노동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려워도, 시절에 맞는 경험을 전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 부모들의 노동력 투자를 저해하는 육아와 교육을 도울 수 있었다. 오늘날의 맞벌이와는 형태가 다르지만, 가족 전체가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가족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되었지만, 노인들의 일자리는 능력과 건강상태에 비례하여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노동력을 농경사회의 역할과 비슷하게 손자들 돌봄으로 환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방안들도 생겨나고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각자 떨어져 살더라도 육아를 도와주는 방법은 많을 것 같다.
젊었을 때 직장생활에 우선하면서 자녀들의 육아와 교육에 비교적 소홀하였던 남자들이, 늙어서 은퇴 후에는 손자 교육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한다. 나도 육아와 교육에 있어서는 반성의 여지가 많고,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작은 보상이나마 손자들이 생긴다면 대신하고 싶다. 독립한 아들들과 어떻게 이 문제를 병립할 수 있을지 앞으로 풀어가야 한다.
손자들을 돌본다는 것이 육아에 관여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될 것이고, 아들 내외의 요구와 해 줄 수 있는 능력에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새로 관계를 시작한 며느리와의 의견 차이는 클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어쩌면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아직 먼 일에 대한 기대가 너무 거창하다.
아직 미혼인 아들들과 이런 사안들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는 않았다. 아들들은 미래의 구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결혼하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여 몹시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현실이 되었을 때, 너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옛날에 드라마에서 아들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너무 가까이 있어서 서로 관여하면서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너무 멀지도 않으면서 또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명절을 앞두고 아들로서 부모님들께서 바라는 역할을 얼마나 했는지 되돌아 반성하면서, 아들들을 향한 바람을 적어 본다.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원칙을 정해 두려고 한다. 서로의 생활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전통의 작은 끄트머리는 잡고 있으면서, 서로를 속박하는 인습에서는 벗어나자. 나중에 현실이 되었을 때, 또 어떤 마음의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생각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