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맞이 색다른 고향여행

효도하겠다는 아들 덕분에 뜻깊은 설날이 되었다.

by 여문 글지기

코로나 19로 인하여 몇 년 만에 고향의 양가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연휴기간에는 열차 예매가 어려워 설날을 앞두고 미리 다녀온 2박 3일간의 여행이었다. 큰 아들이 어려운 휴가 이틀을 내고 비용의 거의 전부를 부담한 특이한 고향방문이었다.


작년 말에 직장을 퇴직하고 시간의 제한은 없었으나, 연휴기간의 장거리 운전과 교통체증을 염려하여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연휴 전에는 열차 예매가 가능하다면서 평일 휴가를 신청하여 갑자기 고향에 가게 되었다. 명절 당일은 아니었지만, 대신 항상 빠듯하게 오가기 바쁘던 일정을 벗어나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혼 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직장으로 인하여 먼 곳으로 이사 다니기 바쁘고 고향집은 연례행사로도 쉽지 않았던 시절을 보내고 나니, 퇴직하고 나서도 명절에 고향을 방문한다는 생각이 선뜻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동안은 생신과 제사 같은 행사에 방문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일이 더 자연스러웠고, 명절은 따로 지내왔었다.


남쪽 끝의 관광도시여서 다녀오려면 정말 큰마음을 먹어야 했었는데, 10여 년 전의 엑스포로 인하여 교통사정이 급작스럽게 좋아졌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내 마음 따라 한가롭게 보였다. 몇몇 소도시를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기찻길이 있어서인지 차와 사람들의 왕래는 많아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여전하지 않으셨다.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온몸으로 나타나 있었다. 특히 걸음걸이가 시원찮은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하였다. 혼자되신 지 20년이 지난 장모님도 아직 건강을 크게 염려할 것은 아니지만, 편찮은 곳이 늘어나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설은 명절이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과 먼저 간 사람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서인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동안의 고향 방문은 바쁜 시간에 생신이나 제사를 위한 빠듯한 여정이었기에, 막상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들의 제안으로 양가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관광 명소들도 돌아보면서 우리 가족만의 한가한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직업군인인 둘째는 제외하고)


어린 시절에는 자주 방문하던 여수의 대표 관광지, 오동도를 한가롭게 걸어보았다. 아내도 오동도에 대한 추억은 아주 오래되어서 동백나무 사이로 마련된 오솔길, 해안가 절벽으로 난 길 등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아주 적은 비수기이고 더구나 평일이어서 더 한가로운 섬 산책이 되었다.


벌써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면서 서울과 다른 기후와 식생에 대하여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꽃가지사이를 오가는 작은 새를 보고 웃으면서 여유를 만끽하였다. 신이대가 터널을 만들 길을 걸으면서 오동도에 얽힌 전설도 다시 생각해 보고, 옛날 화살의 재료였음을 상기해 보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등대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동백차를 마시면서 겨울 바다에서 오는 찬바람을 잠시 이겨보기도 하였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계절의 관광지에서 한가롭게 거니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이순신 광장의 너른 공간도 다니는데 거칠 것이 없었고, 인파에 밀려서 제대로 사진조차 찍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역사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진남관이 공사 중이어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그 아쉬움은 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옛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는 고소대의 대첩비각으로 오르면서, 벽화를 만든 사람들의 노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복잡하게 배치된 오래된 집들의 공간이 벽화로 인하여 밝아 보이기도 하고, 여수의 명소 중의 한 곳이라 하니 새롭게 보이기도 하였다.


MZ세대 아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해변의 2층 카페에서 바라본 바다 풍광을 이야기하였다. 장군도와 돌산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쪽 빛 바다와 파도는 없으나 썰물 때를 만나 흐르는 물결, 그리고 그 위로 빛나는 햇살들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더 오래 있고 싶은 장소였고, 더 오래 느끼고 싶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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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엑스포 행사장은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휴관 중이다. 그래서 넓은 공간이 겨울바람과 함께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2012년 행사장을 구경할 때는 한여름이었고, 관람하는 인파로 인하여 무척 번잡스러웠었다. 지금은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다. 그런 날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하여 오히려 마음 한쪽이 아련해진다.


그런데 그 공간의 한쪽에 아르떼 뮤지엄이 있었고, 기차 시간까지의 여유를 이용하여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적지 않은 입장료였지만, 막상 입장하여 돌아보니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의 힘이 대단함을 느끼고, 빛으로 구경하는 예술작품들은 직접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옛 추억에서 갑자기 초현대의 문물을 같이 맛본 충격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고향의 소식을 인터넷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연간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가는 관광지이고,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유행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래서 다녀 간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보게 된다. 고향사람들도 모르는 유명 음식과 식당, 명소들이 즐비한 것에 놀라기도 한다. 내가 자라면서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이 여수를 대표하는 음식에 선정되어 있는 사실에는 생경함에 낯설기도 한다.


그래도 이번 설은 기억에 남을 명절이 되었다. 아들이 아직 미혼이어서 이렇게 계획하고 앞장서서 안내하고 다니면서 비용까지 지불하였으니, 앞으로는 쉽지 않을 기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둘째 아들까지 포함한 여행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색다른 고향방문으로 나도 부모님께 작은 효도를 할 수 있었고, 아들에게서 큰 효도 선물을 받게 되었다. 부모님들이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데,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실천이 어려운 걸 반성해 본다. 모처럼의 휴가까지 사용하여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 준 아들에게도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