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기 위한 이른 마음 걱정

행복한 미래를 열어가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아

by 여문 글지기

설날 명절의 연휴를 앞두고 아들이 먼저 고향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내심 놀랐다. 사실 며칠 전부터 아내와 고향에 갈 것인지 여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절반쯤은 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있었다. 간다면 기차표 예매는 이미 늦었으니, 자가용을 이용하여 가기로 하고, 먼 거리와 교통체증에 대하여 미리 우려하고 있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아들이 먼저 계획을 가지고 와서 고향방문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인사이동을 앞둔 회사 사정에도 불구하고 연차를 사용하여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인사를 드리고 오자며 열차표까지 예매를 하고, 마치 통보하듯이 제안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놀란 이유는 단지 먼저 제안하고, 연차를 내서 일정을 계획하고 비용까지 부담하겠다는 것 외에 또 있다. 바로 양가의 조부모님들이 뵙게 되면 당연한 질문이 아들에게는 큰 스트레스여서 몹시 거북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 예견되기 때문이었다. 바로 “결혼은 언제 할 거냐?”하는 질문이다.


다행히 그동안 전화를 통하여 손자가 싫어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이 많아서인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머니께서는 지나가는 말 정도로만 물어보셨다. 아들도 대답을 건성으로 하고, 대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하시라는 덕담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하여 어색한 순간은 잘 마무리되었다.


큰아들과 동갑인 조카(형님의 딸)는 일찍 배필을 만난 덕분에 올해 초등학교 6학년에 진학하는 아들을 두고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보는 외가의 작은할아버지가 낯설어서인지 아직까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손자임에는 분명하다. 부모님들은 증손자가 커가는 모습에 무척 대견해하시면서도, 친(親) 증손자를 은근히 바라고 계신다. 그런데 나는 30대 중반의 미혼 아들만 둘이다.


연년생인 아들들에게 사촌들이 8명 있는데 나이 차이는 위아래로 다섯 살 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여자애들만 둘이 결혼하였을 뿐, 여덟 명이 미혼이어서 조부모님들이 수년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치셨을 법하다. 그래서 이번 설에는 서로 답을 알고 있는 질문들은 애써 피한 것인가?


100세 시대를 맞아서 변하는 것이 많은데,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도 포함된다. 1960년대 전후의 시대에는 결혼을 비교적 빨리하였지만, 노인들의 생존기간이 지금보다 짧아서 증손자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존기간이 길어진 요즈음은 결혼 연령의 후퇴로 인하여 4대가 같이 지내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도 어느 강의에서 우리나라 생산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대한 우려하는 우울한 통계를 보았는데, 그 우려의 원인 중에 내 아들들과 그 미혼의 사촌들이 포함된다. 물론 젊은 세대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아직까지 결혼이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우리의 생활상과 문화를 고려할 때 걱정이 된다.


그래서 베이비 붐 세대로 태어난 끼인 세대인 우리들만 부모님들을 봉양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미혼인 자식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결국 손자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고, 증손자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아버지들 세대보다 길다고 할 수 없다. 기대수명이 더 길어져도 그런 점은 비슷하다.


일반적인 경우에 결혼식을 진행하는 방식은 양가의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시기를 조율해야 하고 장소를 정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결혼식에 초청하는 인원에 대한 합의도 어느 정도는 이루어져야 한다. 한쪽의 의견만을 고집한 일방통행식의 결혼식은 어렵다. 그래서 아직 혼례의 당사자들도 결정되지 않은 시기지만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다.


인터넷과 메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급속도로 가까워진 서구 문화, 그중에서도 결혼 문화가 미치는 영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핵가족화되어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별도의 삶을 당연히 여기는 문화는 우리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인구는 줄어도 가구 수는 줄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사실이 그 증거이다.


프랑스 같은 유럽의 일부에는 결혼식은 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자식들을 낳고 기르거나, 비혼주의를 선언하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여론조사에서도 결혼의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외국 문화의 유입현상의 일부일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여 양가의 가족들을 만난 것 때문인지 아들들이 가정을 이루는 것이 더 기다려진다. 어쩌면 장성한 아들들에 대하여 남아 있는 마지막 의무가 우리 문화에서는 결혼식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결혼식에 대하여 걱정이 되는 바가 많다. 나는 결혼식이 미래의 희망을 열어가는 작은 통관 의례가 되기를 바라지만, 보여주기 식의 결혼문화가 만연한 세태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염려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의견에서 의연하자고 하면서도 오히려 위선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는 없다.


상부상조의 전통에서 비롯된 축의금을 부조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요즘이다. 그동안 부조하였으니 나의 차례가 되면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과 축복받아야 할 자리가 마치 빚 독촉받는 것 같은 자리로 변질되었다는 의견이 맞선다. 본전 생각에서가 아닌 미풍양속으로서의 부조문화로만 남기를 바란다.


결혼식은 결국 당사자들 의견이 가장 중요한데 불필요한 걱정을 미리 하고 있다. 이것도 지금 시기가 연초이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것인 만큼, 더 현명한 생각으로 미래를 위해 잘 준비하고 결정할 것으로 믿는다.


서두르지 않고, 서두른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만 마음 한 구석의 짐을 아제는 내려놓고 싶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아주 후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