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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un 18. 2023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

인생 2막을 위한 길에 정답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40년 지기 친구들 몇 명을 만났다. 청운의 꿈을 품은 스무 살의 젊은 시절에 만나 환갑을 전후한 시기까지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다. 한 때는 매일 보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이 언제였는지 서로의 기억을 맞추어 보지만 잘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제 만나고 헤어진 친구들 보듯이 스스럼없이 반겨할 수 있다. 친구들을 만날 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 헤어지고 집에 와서 돌이켜 보니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척들보다 더 격의 없는 사이로 이렇게 긴 시간을 같이하고 있다니……


친구들 간의 우정의 끈을 강하게 하는 것은 기쁨을 같이한 기억들보다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낸 시간들이다. 그 어려웠던 시간에 혼자가 아니고 같이 가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절차탁마’를 외치며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꿈을 향해 같이 가자고 다짐을 주고받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못 보고 지냈더라도 서먹함이란 벽을 지워버리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시간의 흔적들이 외모에 그대로 묻어나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는 사이의 만남은 잠시 못 보고 지낸 시간들이 전혀 방해가 될 수 없다. ‘로맨스 글레이’라며 흰머리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아도 되고, 염색으로 세월을 잠시 비켜가려고 하는 노력도 서로에게는 흉이 되지 않는다.


이마가 넓어진 친구도 있고, 머리숱이 유별나게 줄어든 친구도 있다. 아직도 젊은 시절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의지력 좋은 친구들도 있고, 넉넉해진 허리둘레가 인상적인 친구들도 있다.(같은 부류를 만나면 동질감을 조금 더 느낀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흉으로 보이지 않고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40년 세월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이 친구들 대부분에게 올해는 특히 중요한 해이다. 대부분 ‘법정 정년’에 이르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가장 주된 일자리에서는 모두 물러났지만 그 일자리와 연계된 일자리에 이직한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일자리로 전직한 경우도 있다. 이제는 대부분 그 일자리에서도 물러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시가가 이미 왔거나, 오고 있다. 


정년을 정하는 방식은 일자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만 60세가 되는 해의 연말까지를 근무기간으로 하는 곳도 있고, 생일이 속한 달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일 년에 두 번씩 정년퇴직을 하는 곳도 있다. 심지어 생일이 속한 달이나 그다음 달을 정년으로 하는 곳도 있을 정도로 다양하게 정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만 60세가 되는 연말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물러나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물론 60세 이후까지 연장하여 일하는 능력이 좋거나 운이 좋은 친구들도 있기는 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좀 더 정확하게, 인생 2막의 길은 어디로 방향을 정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가?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문제를 좀 더 일찍 생각하고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방향을 정하여 가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길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여부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과 경험을 빌어서 검증해 보고 확인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정답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며칠 전인 6월 15일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열린 ‘2023년 서울시 중장년 취업박람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가졌다. 50여 개의 기업들이 함께 자리를 마련한 중장년 대상의 박람회였는데, 기사를 보니 2,000여 명의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소식을 접하고 참가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들이겠지만, 그래서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과연 몇 명이나 원하는 길이나 방향을 찾았을까? 이런 곳조차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길을 찾고 있을까?


살아가면서 선택의 순간을 자주 마주치곤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던가. 그 선택으로 인하여 긴 여정의 방향이 아주 달라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되돌린 선택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지만 나중에 보면 쓸모없는 것에 시간만 낭비했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택은 어렵다.


지금도 선택의 순간이다. 인생 2막을 향해 가는 길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는 모른다. 아직 가보지 않았으니까. 나중에 지금의 선택에 대하여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아니 이런 고민의 시간을 거쳐서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기억이나 하게 될까? 그래서 선택의 순간은 설렘도 있지만 항상 두려움과 망설임이 함께하게 된다.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인생 2막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제는 가장의 짐을 벗어두고 자연인으로서 ‘나’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그 길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알면서도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을 떠나서 온전히 나만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답은 정답이 아닐 수 있고, 선택은 순간으로 끝나지 못하고 길어지고 있다.


호주에서 호스피스로 일했던 어느 간호사가 쓴 글에서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죽기 직전에 후회되는 일에 대한 글이었다. 조금 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한 것, 나에 대한 투자를 조금 더 많이 하지 못한 것 등 하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저런 후회를 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정도가 가장 적은 답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찾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 열심히 찾으면서, 적어도 찾기 않고 시간만 낭비하였다는 후회는 없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자기에게 맞는 답을 찾아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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