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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Jun 11. 2023

걸으면 보이는 것들

향기와 새소리가 더해지면 풍경이 달라 보인다.

직장의 옆 부서에 근무하시는 분이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며, ‘걷기’의 예찬론을 펼쳤다. 허리가 좋지 않았었는데 걷기를 늘렸더니 어느 순간 허리 통증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며, 걷기의 가장 큰 효과라고 했다. 이제 급할 것이 없는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닌다고 한다.


경유로 움직이는 차들이 줄어서 큰길의 인도를 걸어도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없는 날은 크게 불편하지 않다. 더구나 주위에는 작은 산과 하천마다 걷기에 좋은 길들이 마련되어 있다. 대로와 주택가로부터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산길과 하천 길을 걷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분은 네 정거장 거리의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데 주로 걸어서 왕복한다고 하였다. 때로는 인도를, 때로는 산길을 이용하는데 지루함도 줄이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자랑하였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빌려 와서 읽기도 한다는데 그 책과 더불어 즐거워하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된다.


나의 출퇴근길을 돌이켜 본다. 운전을 해서 갈 수도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걷는 것도 가능한데,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실천은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나도 걸어 보자는 생각이 더해졌다.


운전을 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주차요금의 부담이 생긴다. 공공시설이지만 직원들에게도 무료주차의 혜택은 주어지지 않는다. 매번 주차요금을 지불하면서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하는 것은 어렵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움직임을 늘리는데 오히려 좋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대중교통은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모두 가능한데,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시간은 좀 더 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창밖으로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였다. 도시의 풍경이 대부분이지만 어두운 터널보다는 좋다.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들은 조경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 주변 풍경의 단조로움을 줄여주고 있다.


지난주부터 출근은 버스로 하고 퇴근은 걷기로 하였다. 아침부터 걸어서 가는 것은 6월의 기온조건으로 볼 때, 땀으로 인해 업무 시작에 지장이 될 것 같아서다. 걷는 것이 버스보다 겨우 20분 정도 더 걸릴 뿐이었다. 이제 시작한 지 일주일이고, 그것도 다른 곳의 약속 때문에 하루는 걷지 못했는데 기분은 벌써 건강해진 느낌이다. 


날마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직접 운전을 할 때는 주로 교통의 흐름과 신호체계에 신경을 쓰다 보니 길 주위의 독특한 외양의 건물이나 특이한 시설물 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버스를 이용하였더니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었고, 걸을 때는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잠깐의 출퇴근하는 버스에서는 가급적 휴대폰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창밖의 풍경은 매일 같아 보이지만 매 순간 다르다. 놓치고 지나치더라도 하등의 문제 될 것이 없는 일상이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좋다.


그런데 걸으면서 보는 것은 자가운전이나 버스를 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잠시 멈추거나 느리게 움직일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도 이처럼 무심결에 흘려보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모두 보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고 하더라도 삶 전체에 크게 영향을 미치거나 달라지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아쉬움은 덜하겠지.


인도를 걸을 때와 건널목을 걸을 때의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다르다. 구역마다 보도블록의 모양이 다르고 재질도 다르다. 눈길을 바닥만 보면서 걷더라도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부러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뇌의 기능은 놀랍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사회의 구성원들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전거와 사람들이 같이 이용하도록 조성된 인도이기에 자전거도 많이 다닌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니 위험하거나 불편할 것은 없다. 이것도 어울려 사는 사회의 일면이다.


퇴근길의 여유는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조급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때도 있다. 생활방식이 아주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거기서 오는 감상은 많이 달라졌다.


걸으면서 보게 되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작은 놀이터를 지나며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이 멋진 광경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밝고 맑은 표정, 그리고 웃음소리는 모두 같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들도 공원 주위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다. 종류와 크기가 다양한 개들이 주인과 함께하고 있다. 표정의 변화를 읽을 수는 없지만 이 순간이 행복한 때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함께하는 것은 얼마나 더 좋을까.


또 하나 좋은 것은 길의 중간쯤의 오르막길을 걸을 때 느끼는 것들이다. 차를 차고 자날 때는 그저 작은 숲일 뿐이었다. 그런데 걸으면서 보면 나무와 풀들이 보인다. 주위에 꽃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향기가 느껴진다. 작은 들꽃들이 어디선가 열심히 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겠지.


여러 종류의 새소리도 들린다.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자주 접하지 못해서 무슨 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철을 맞아 열심히 나무 사이를 날며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소리만으로도 즐겁고, 새소리와 함께하는 길 주변 숲의 모습은 차에서 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좋다. 


아주 작은 생활변화가 주는 마음속 큰 느낌의 변화! 마음의 여유와 몸의 건강을 위해서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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