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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Dec 25. 2023

휴일 스케줄의 우선순위는?

부부의 행복은 일상의 작은 불일치들을 줄여가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휴일의 스케줄에 대한 우선순위를 아내가 결정한다. 휴일에 외부 일정이 잡혀 있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예외가 없다. 물론 나를 배려하고, 나의 의견을 물어서 반영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아내가 주중에 차곡차곡 정리하여 간직한 일정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주에는 집안 청소를 도와 달라, 대형 쇼핑센터에서 살 것들이 많으니 운전을 해 달라, 또는 어디를 꼭 가고 싶으니 같이 가자.’ 하는 것들이다. 남편의 건강관리를 생각하여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할 시간은 꼭 반영해 준다. 그래서 점점 휴일에 계획이 없어져가는 마당에 반대할 일은 거의 없다.


아내가 새로운 것이 배우겠다는 의지로, 구청에서 운영하는 중장년 대상의 각종 교육에 참가하고 있다. 짧게는 4주에서 길게는 10여 주에 걸쳐서 진행하는 수업이다. 특별히 적용할 곳은 없더라도 배우겠다는 것에는 찬성이고, 적극 권장한다. 


지금 배우고 있는 수업은 휴대폰의 카메라를 이용하는 앱이다. 직접 찍은 사진 등을 이용하여 글자와 장식을 넣어서 꾸미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특이한 사진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구청 앞에 조명장치를 이용하여 화려하게 단장한 트리가 세워졌다고 한다. 밤 시간이라야 제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야간에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것이 이번 주의 주문이었다.


무조건 따라나선다. 차가운 날씨에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나마 따뜻하게 녹이기 위하여 마련한 공간이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나 반영한 의사 결정자, 그리고 겨울 날씨에 직접 꾸민 사람들의 정성까지가 모아져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밝히고 있었다.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인적이 많지 않은 공간을 밝히고 있는 트리를 보는 것은 차가운 날씨를 잊게 할 만큼 좋았다. 더 좋은 것은 낮에만 보다가 불 밝혀진 밤에 직접 보고 기뻐하는 아내를 보는 것이다. 아내는 ‘드디어 밤에 보았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함께 보는 것과 같이 사진을 찍으며 좋아해 주는 남편이 있어서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나 혼자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돌아오는 길은 추위가 덜했다. 한파가 어느 정도 물러간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오랜만에 조명이 켜진 폭포광장을 걸으며 대화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간에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계획한 일정에 따라주고, 같은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같이 웃는 것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들들이 성장하고, 각각 제 길을 가면서 부부간의 대화의 주제 하나가 줄었다. 그런데 나이와 반비례하여 줄어드는 창의성은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이벤트를 잘 만들어내지 못한다. 직장 생활을 핑계로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는데, 이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갈 때이다.


고집을 줄이고, 아내의 의견을 먼저 따르는 것이 작은 행복의 밑거름이다. 이길 수도 없지만 이기려고 하는 마음부터 내려놓는 것이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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