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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웨이즈 정은미 Jun 30. 2021

그날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저는 누구 앞에 서면 말을 잘 못해요



나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을까?


22살 대학시절, 학교 큰 강당에서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다른 과 동기들 선배님들과 함께 몇 달 동안 밤을 새 가며 준비한 것이다.

학교에서 이미 최신 노트북 지원을 해줬으며

표면적으로 1등은 해외연수 특혜가 있었고,

선후배가 함께 방대한 자료를 모아서 하나의 논문의 형태로

발표를 하는 것이기에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발표는 누가 할까? 음.. 은미가 한번 해볼래?"

"네?"

"네."


발표자는 내가 되었다.

신입생 중에 발표자를 찾는 분위기였는데

1학년 때 반년 휴학을 했었기에 한 살 많은 나를

선배들이 시킨 느낌이 들었다.


발표할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을 하고,

실수를 하면 안 되기에 A4용지에 큰 타이핑으로 대본 적은걸 준비했다.

마지막 일주일은 거의 새벽 3~4시까지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검은색 정장 마이도 누구에게 빌렸다.


강당 앞쪽에는 관련 교수님들이 쭉 앉아계셨고,

뒤쪽에도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앞에 발표자들은 모두들 실수 없이 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내 차례다.

내가 생각하는 잘하는 발표자는

청중들을 바라보고 설득을 유도하는 눈빛을 하며

대본 따윈 보지 않고 술술 본인이 의도하는 바를 또렷하게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반면,

나는 PPT에 띄어진 자료와 내가 말하는 것이 일치되는지를 확인을 하고 있었으며

대본을 슬쩍슬쩍 의지하고 있었다.

약 20여분 정도의 발표를 끝내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넋이 나간 채, 나머지 시간을 보낸 듯하다.





그때 그 마음이 굳건해졌다.

"나는 발표를 잘하지 못한다"




그 이후로, 조별 발표가 있으면 뒷전으로 물러났다.

발표는 늘 다른 사람이 하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22살 나는 왜 그랬을까?







우리 조는 2등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발표자들은 다들 긴장하고 있었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젊고 패기 넘치는 대학생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10년도 넘은 지금에 와서 생각한다.


꼭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됐었는데...

좀 더 자신감 있게, 좀 더 대차게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떠한 사건은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붙어 나를 가두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또 생각해봐야겠다.

나를 정의 내리는 어떤 모습을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그것을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두고서.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은미야! 선배님들이 네가 책임감 있게 잘할 거 같으니까 발표자로 시킨 거야"

"은미야! 발표는 언변술이 뛰어난 게 다가 아니라, 표정, 태도, 눈빛이 진심이면

듣는 사람이 느끼는 거야. 그게 통했나 봐!"

"은미야! 네가 잘해줘서 우리 2등 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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