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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웨이즈 Jun 08. 2024

허술한 시작 마흔의 달리기

러너라는 것.


2023년 11월 어느 날부터인가, 우울함인지 무기력감인지 모르는 게 왔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이 완전히 안 되는 건 아니다.

카톡을 잘 확인하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빨래든 뭐 하나 하고 나면 에너지가 쑤욱 빠져서 1-2시간을 쉬어야 하는 정도.

그 사이사이 활력을 찾기 위해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하고, 평소 알고 지냈던 분께서 커피숍에 나가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기도 했다.

잠깐씩이었지만, 일을 하고 있는 중에는 머리가 비워지고, 활력을 주는 듯했다.

하지만 끝나고서의 정신적 허탈감들이 더해져서, 점점 둔하면서도 발톱을 숨기고 있는 포악한 동물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살이 10kg이 쪄서 몸도 둔해졌다)


날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6개월 정도의 그런 미적지근한 시간을 보내고 4월이 되어서

문득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을 많이 내고 싶고, 심박수가 올라가서 헉헉 거리고 싶었다.

3년 전쯤 한참 어린 아들을 키울 때, 다이어트를 하고자 1년 정도 다녔던 센터가 생각났다.

그 센터를 다니면서, 살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게 된 일이 지금에서야 떠오른다.


헬스장이든, 요가센터든 내가 하고자 하는 운동이 있으면 먼지 모르게 거슬리는 점이 있다거나 거리낌이 없어야 하는 적절한 환경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글로 풀어보자면 어느 정도의 선이 있는 적당한 관심제대로 된 운동이 될 거라는 전문성과 모인 사람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파수의 에너지 등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아주 복잡한 것의 합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이러한 필요조건이 충족된 곳이 바로 내가 다니는 센터이다. 이미 1년 정도를 꾸준히 다녔다는 것은 이 필요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사실이다.  


2024년 4월부터 다시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치님께서 단톡방에 초대를 해주셨다.

여태 일을 하며 많은 단톡방들이 있던 것을 정리하거나, 유령처럼 있는 곳이 많았는데 선뜻 그 초대가 감사하고 반갑기까지 했다.

이 단톡방은 나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긍정적이고, 좋은 에너지를 갖기 위해 혹은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인 듯하다.


여기에 들어오니, 조금 적극적인 사람으로의 내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질문을 해봤다. 자진해서 고립과 단절을 추구한 던 나에게 대단한 발전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대부분 네이버 검색이나 유튜브를 찾아보는 게 어쩌면 더 편한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냥 용기를 내 보았다.

농담을 해주시는 분, 진지하게 답변을 해주시는 분 등등 다양하게 의견을 달아주셨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답변을 해주시는 분들을 보고, 이러한 다정함을 그동안 갈구했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단체카톡에서의 말 한마디를 해보는 일은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5월 마지막 날


"이번주 토요일 왕복 10~12킬로 달리실 분 계실까요?

속도는 맞춰서 갑니다~~"라는 톡이 올라왔다.


10km라는 거리를 뛰어본 게, 2017 RUN ON SEOUL 10+1km RACE 가 마지막이었다는 것이

'나 10km 뛰어본 적 있어.'라는 언어로 뭉겨져 뇌에 전달되면서 경험을 해봤으니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톡을 보냈다. 7년이 지났고, 그때는 30대였고, 지금보다 10kg 이 덜 나갔고, 신체적 리듬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저도 참여해도 될까요?"


"네 오세요 환영합니다."라는 말로 나는 그렇게 다음 날 아침,

가벼운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 나갔다. 다른 말로는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말이다.


운동화는 뉴발란스의 530시리즈 화이트이다. 지금 찾아보니 이 운동화는 라이프스타일에 들어가는 모델로, 외출 시에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운동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 운동화가 너무 편하게 느껴져서

센터운동할 때도 다른 컬러로 신고 있었고, 일단 이뻐 보여서 어디 나갈 때면 자주 찾곤 하는 운동화이다. 그런데 10km 거리를 뛰는데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는 운동화였다.


다음은 머리를 묶지 않았다는 것이다. 긴 단발 기장의 머리카락이 이렇게 거슬릴 수가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다. 뛸 때마다 날리는 게 참 거슬렸다. 왜 머리끈 하나 안 챙겨 왔을까.. 사실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평소에 머리 묶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야외이기 때문에 바람에 날리니까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글을 써보니 생각의 오류였던 것.

땀은 무척이나 많이 났고, 몰골은 점점 변해가는 데 그것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느낌이다.



"1km에 얼마나 뛰세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서 버벅거렸다.

"1km에 6분대로 일단 가볼게요~~" 아 ~~ 뛰면서 알았다. 1km당 몇 분 안에 가는 건지 그런 걸 말하는 거구나.

나는 내가 몇 분 대인지 당연히 모른다.

1km 정도가 지났을까? 나의 심박수는 미친 듯이 올라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뭔가 잘못됨을 인지한 거 같다. 지금 내가 뭘 한다고 한 거지?

10km 러닝이라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 건지 1km를 지나고 확 알게 되었다.

내 숨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리고,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불안정한 자세로 뛰고 있다는 것.

같이 뛰어주시는 분들께서는 이런 내가 걱정이 되시는지 계속해서 뒤돌아보고 나를 챙겨주시기 시작했다.

괜찮냐고 말씀해 주시고, 길이 안 좋으면 먼저 체크해 주시고 조심하라고 해주셨다.

지금의 속도에서 조금 늦출지도 물어봐 주신다.


그렇게 5km를 어찌어찌 뛰니, 다른 동네의 호수공원이 나왔다. 너무 신기했다. 집에서 차로 간다면 약 20분 정도 걸리는 이곳을, 걸어서 올 수가 있다는 것이 조금 감격적이고 재밌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코스를 기점으로 다시 돌아오면서는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발목도 살짝씩 아프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2017년 마라톤에서도 오른쪽 발목이 아파서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걸어갔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같이 맞춰가주시는 분들이랑 맞춰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힘겹게 힘겹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눈에는 맑은 하천이 보이고, 6월을 알리는 여름빛의 풀들도 눈에 보인다. 괜찮냐고 물어보실 때마다, 미소로 대답하는 나도 보인다.




그렇게 10km를 달렸다. 1시간 5분이 걸렸다.

나는 어떤 기준의 속도가 없기 때문에 이 정도 걸렸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크게 있지는 않았다.

여하튼 잘 뛴 거 같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앉지 않고 뛰었다는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달리기라는 것이 정말 이렇게 달리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학교 다닐 때 했던 오래 달리기, 20대 때 재밌어 보여서 해본 5km 마라톤, 결혼 후에 아는 동생이 하자고 해서 나가본 10km 마라톤 등의 저 깊숙이 있던 조각조각들이 다시 선명하게 드러난 경험이다.

마지막 2km 정도 남았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속도를 못 내서 그들의 속도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는 "먼저 가세요!"라고 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후진해서 돌아와 발을 맞춰 주신다. 그래서 나는 걷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무렇게나 달렸던 나의 첫 달리기. 

매력 있다.

바람을 가로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느낌이 좋았고 끝이 보이지 않아서 앞만 보고 달리고 나니

어느 새 완주의 기쁨이 있다는 것이 좋다.

유산소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리에 힘이 붙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느껴졌던 달리면서 느꼈던 일종의 경험의 깨달음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같이할 때 나의 최고치를 끌어낼 수 있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러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은 올해 나의 컨셉인 거창한 계획으로 나를 몰아세우지 않으려면

달리고 싶을 때 달리는 걸로 생각해 본다. 일단 이 세계에 슬쩍 발을 담가 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내가 운동을 시작하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고, 좋은 것을 알게 된 것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는 좋은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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