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에 가까워지고 있던 2020년 여름 생각하지 못한, 아니 생각만 하던 부부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전주에 갔다.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는 시댁에 우리 부부는 무슨 일로 이토록 자주 가게 된 걸까?
20개월을 막 넘긴 아이를 데리고 수원-전주를 오가고 있었다.
그 해 여름, 유난히 병충해 피해를 많이 입고, 비가 많이 내려 평균 수확량의 절반도 수확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납품가도 현저하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복숭아는 닿는 순간 멍이 엄청나게 잘 드는 과일이다.
특히, 물렁한 복숭아 같은 경우 택배로 정성껏 포장해서 보내지만, 해마다 소량의 택배 사고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지역 농협이나, 집 앞에서 장사를 하는 것으로 1년을 생활하시는 시부모님 이시다.
그런데 당장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힘들어하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몇 년 동안 고민하고 생각만 해왔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바로, 복숭아 쨈과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쨈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많은 리서치를 하였다.
쨈의 당도, 과육의 크기, 일정한 맛을 잡기 위해 시간이 될 때마다 전주에 가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시중에 파는 쨈의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수제로, 신선한 복숭아가 듬뿍 들어있는 맛. 그 맛이 나오기까지 10번 이상 테스트를 했던 것 같다. 요리 전문가를 찾아가서 특별 비법을 배우기도 하고, 쨈 전용 기계를 사서 고품질의 맛 좋은 쨈을 만들었다.
복숭아 병조림 같은 경우는 어머님께서 다년간 해봤던 경험이 있으셔서 약간의 농도조절만 하면 되겠다 싶을 만큼 맛있었다.
그냥 먹을 것이 아니라 판매를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병 크기와 모양을 선택해서 주문하고, ‘로이패밀리 복숭아쨈, 조림’이라는 스티커도 제작하였다.
가격 또한 결정하는데 몇 날 며칠이 걸린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팔까? 그리고 어떻게 홍보할까? 하고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바로 당근 마켓!
가까이 사시는 분들에게 제품을 직접 배달해 드리고 선보이면서 우리 제품의 가치에 대해 하나하나의 피드백을 받기 좋다고 생각했다.
가끔 육아용품 중고거래를 하기만 했을 뿐, 홍보문구를 쓰는 것과 사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예쁜 카페에 갔다. 유리병 쨈과 병조림을 낑낑 메고.
100장 200장이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보일지, 눈에 띄는 문구를 생각하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글을 올렸다.
감사하게도 제품들은 거의 바로 팔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생산지(전주)와 판매처(수원)가 너무나도 멀고, 신선도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만들 수가 없었다. 한달에 한두 번 가던 전주를, 판매가 시작되고는 일주일에 한번씩 가기 시작하였다.
‘하나라도 팔릴까’
팔고 싶었다. 나 혼자만의 정성과 시간을 들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팔아야만 한다.
나와 남편은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서 아이와 함께 저녁 6시에는 어김없이 배달을 나갔다.
보통의 당근 거래처럼 집 앞에 나오시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다가 점점 현관문까지 배달을 해 드렸다.
“아기가 어려서 시간 맞춰 나가기가 힘들어요.”
“퇴근 전이라, 현관문 앞에 두실 수 있으실까요?”
“메시지 확인을 못했어요. 기다리셨으면 죄송해요.”
다양한 사연들은 data가 되어 배달되는 순간부터 만족감을 드리기 위해 자처해서 집 앞 서비스를 진행하였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과 오자마자 포장을 하고, 내비게이션의 배달할 곳을 저장하고 수원 곳곳을 다녔다.
배달을 하는 동안 남편이 차 안에서 아이를 봐 주었다.
20개월 남짓한 우리 로이와, 늦은 가을까지도 배달은 계속되었다. 결론적으로 약 500개 정도가 팔렸으며, 매출로는 1,0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 시도하였기에 일어난 순간이었다.
당근에서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그해 말,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바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 동안 열심히 했다는 보상의 상.
시 부모님, 남편 사이에 있는 나.
진행과정동안 많은 줄타기를 하며 평일에는 배달을 주말에는 수원-전주를 오가는 일을 했다.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약 두 세 달 동안, 이 말이 떠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크나큰 깨달음을 얻었다.
먼 일로만 생각했던 장사의 길.
나는 그렇게, 판매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