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 만들기
<남자 이야기>
19살. 수능을 보고 광주에 있는 사촌 형 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사촌 형은 나와 15살 정도 차이가 나고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곳에서 두어 달을 보냈다.
가서 며칠을 있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친구들이 연락이 잘 안 오네...?"
매일 붙어 다닌 던 친구들과 떨어졌는데 막상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니
처음에는 그게 서운한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연락해서 연락 안 하냐고 말하는 건 더 이상하기도 한 거 같아서
그냥 또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문득.
'친하다의 정의가 내가 생각한 정의가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의 꼬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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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것만 다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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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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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이 다 될 때까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구나.
'엄마 뒤에서, 할머니 뒤에 숨어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낸 거구나.'
그곳에서 두어 달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을 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 나와 성이 다른 여자 친구들 등
새로운 인물들이 인생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밌었다. 그리고 술도 진탕 마셔봤다.
6개월쯤 지났을까.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가 좋아하던 거 말고, 내가 하기 꺼려하는 걸 다 하자.
내 모든 생활을 반대로 바꿔버리자!
나는 술을 좋아한다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 욕을 섞어가며 이야기한다
나는 책을 안 읽는다
나는 거짓말을 한다
나는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다
밤늦도록 술을 먹는 대신에, 권투와 수영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어 왔어~^^"라고 시작하며
입 밖으로 낸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진다. 전혀 읽지 않던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
어느 자기 계발 책을 보고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낮게 말투까지 확 바꿔버렸다.
정신적 개박살
이날부터, 내 삶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조정하고, 그 결과값을 알기에 자신감이 항상 앞선다.
개박살이 났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우주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우주. 그걸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의 남편의 이야기이다.
난 "늦은 사춘기"라는 말에 가려져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사춘기가 중2 때 왔었는데, 남편은 늦게 왔구나.. 정도로만 이해했었다.
그런데, 어제 이 이야기에 대해 내가 다시 물어봤고
남편은 자기를 알아보려 했던 시간을 19살 때 겪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
내 시간.
그걸 만들기 위해 내가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새벽 아무도 깨지 않는 시간을 내가 장악하거나
아이 하원 시키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까지도
내가 나의 시간을 악착같이 만들려고 하고, 실제로도 만들었고,
그걸로 인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다.
나에게는 출산이라는, 육아라는 사건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는 이것이 큰 사건이 아닐 수 있다.
사건은 아주 지극히 주관적이다. 내가 느껴야 하는 거니까.
아무튼
통제할 수 없는 시간들은 나의 정신을 혼자이게 만들어줬고,
나는 그때부터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 사춘기는 38살. 지금이다.
진정으로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걸 이미 겪은 남편은 나를 기다려 주고 있는 것 같다.
"아이 조금 크면, 은미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말에 대한 책임.
그는 그렇게 해줬다.
옷을 팔고 싶다고 하면 동대문에 같이 가줬고,
내 사무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니 스튜디오를 만들어줬다.
기다려주고 있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데 걸림돌이 있지 않도록.
내 우주를 만드는 데 기꺼이 함께 해주고 있다.